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세력과 권좌를 지키려는 마두로 대통령의 대립으로 두 쪽이 난 베네수엘라가 미국과 러시아 간 ‘신냉전’의 격전지가 되고 있다.
미국이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에게 힘을 실어주며 마두로 퇴진을 위한 압박 수위를 연일 높이는 반면 친(親) 마두로 진영을 대표하는 러시아는 미국 등 서방국을 향해 ‘내정 간섭’이라고 비난하며 마두로가 이끄는 베네수엘라를 ‘중요한 파트너’로 끌어안고 나섰다.
24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회의에 참석해 “베네수엘라에 2,000만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날 폼페이오 장관이 언급한 인도적 지원계획은 전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시대통령으로 공식 인정한 과이도 국회의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AFP통신은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마두로 대신 과이도 국회의장을 지지하면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미국은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구하는 등 주변국들과의 접촉을 확대하며 마두로 정권 퇴진을 위한 국제적인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현재까지 유럽연합(EU)과 아르헨티나·브라질·캐나다·칠레·콜롬비아·코스타리카·과테말라·온두라스·파나마·파라과이·페루 등 미 대륙의 우파 정부들은 미국의 뒤를 따라 과이도 의장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내고 ‘반 마두로 전선’에 동참한 상태다.
미국의 이 같은 행보에 러시아는 즉각 내정 간섭이라며 서방 측의 행동을 강하게 비난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워싱턴이 베네수엘라 위기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내정 간섭”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정말 위험한 징후를 느끼고 있다. (미국의 과이도 지지가) 불에 기름을 붓는 것 같다”며 “군사력에 기대는 것은 대재앙이 될 것이다. 우리는 베네수엘라에서 더 큰 유혈사태를 초래할 시나리오와 마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이날 “베네수엘라에서 러시아 기업들이 활동을 확대하고 있고 통상·경제 및 투자 협력도 진행되고 있다”면서 “베네수엘라는 러시아의 중요한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마두로 대통령에게 전화해 “파괴적인 외국의 간섭은 국제법의 기본을 짓밟는 일”이라며 직접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러시아와 함께 마두로를 지지하고 나선 국가는 중국·쿠바·볼리비아·터키·시리아 등이다. 중국은 외교부 브리핑에서 “외부 세력이 베네수엘라 내정을 간섭하는 데 반대한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의 분노 뒤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영향력을 구축하기 위해 지난 수년간 투자한 수십억달러의 돈이 정국 혼돈으로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는 불편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러시아는 마두로 정권 출범 이후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시설 등에 총 41억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중국 역시 550억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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