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부가 미국의 금융제재를 피하기 위해 러시아 은행 계좌로 자금을 대거 옮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돈줄 죄기’로 벼랑 끝에 내몰린 마두로 대통령이 미국과 대치 중인 러시아를 끌어들인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9일(현지시간) 소식통과 내부 문서를 인용해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인 PDVSA가 최근 러시아계 은행인 ‘가스프롬방크 AO’에 계좌를 개설했다고 보도했다. 가스프롬방크는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인 ‘가스프롬’의 자회사다.
보도에 따르면 PDVSA는 몇 주 전부터 원유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고객사들에 결제 대금을 가스프롬방크 계좌로 옮기라고 요구했다. 페르난도 데 퀸탈 PDVSA 부회장은 전날 합작투자사 감독 부처에 보낸 서신을 통해 이러한 방침을 공식화했다.
이는 지난달 28일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부에 부과된 금융제재를 피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미국은 PDVSA의 자산을 동결하는 내용의 경제제재를 발표하고 각국에 베네수엘라와의 거래를 금지했지만 러시아는 마두로 정부를 지지하며 이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PDVSA는 지난 2017년 경제제재 때도 베네수엘라의 우방으로 꼽히는 중국에 계좌를 열어 자금을 옮긴 적이 있다. 돈줄이 막힌 베네수엘라가 최근 외화벌이를 위해 금 16톤을 아랍에미리트(UAE)에 매각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유럽연합(EU)이 베네수엘라 정권 인사들에 추가 제재를 고려하는 등 마두로 정부에 대한 압박이 각국으로 번져나가자 PDVSA는 서방 기업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로이터는 소식통을 인용해 “PDVSA가 외국 합작투자 파트너 업체들에 베네수엘라 유전지대인 ‘오리노코 벨트’에서 석유 생산 활동을 지속할지 결정하라고 압박했다”고 전했다. 파트너사들에는 노르웨이 국영 석유회사 ‘에퀴노르 ASA’, 미국에 본사를 둔 ‘셰브런’, 프랑스계 ‘토탈 SA’ 등이 있다.
한편 미국은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을 지지한 데 이어 추가 대책을 마련하며 마두로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백악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8일 로이터에 “미국 정부가 베네수엘라 군부 내 일부 인사들을 대상으로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라고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마두로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위해 베네수엘라에 대한 추가 경제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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