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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동이 풀어내는 한민족의 기원]벽화에 그려진 고구려인...실크로드 곳곳 민족의 숨결

<3> 한반도-유럽 잇는 동서 문명 교차로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중심 우즈베키스탄

수천년 문명교류 흔적 간직한 나라

발길 닿는 곳마다 타임머신 탄듯

수많은 유적 그때의 영광 말해줘

카자흐스탄서 발견한 연결고리

유라시아 대초원 탐갈리 유적지와

울산 암각화 등 비슷한 구석 많아

선사시대부터 삶·정서 교감한 흔적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칼타 미나레트, 히바


중앙아시아는 오래전부터 기마유목민이 활동해온 중심 무대다. 기원전 3세기께 몽골 고원을 평정한 흉노제국은 중앙아시아 일대를 정복하고 실크로드를 장악해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 이후 기마유목민족인 유연·돌궐·위구르·셀주크제국·몽골제국·차가타이한국·티무르제국이 차례로 패권을 차지했다.

현재의 중앙아시아 지역은 460만㎢(우리나라 46배)에 달하는데 17세기 이후 청나라·영국·러시아 등이 각축하다가 지난 1880년대에는 러시아가 대부분을 장악했다. 소연방은 이 지역을 수 개의 공화국으로 분리 통치했고 소연방 붕괴 이후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아프가니스탄으로 분리·독립했다.

중앙아시아의 민족은 투르크-몽골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소수민족도 다수 혼재해 있다. 종교적으로는 751년 탈라스전투에서 아바스왕조가 고선지 장군이 이끄는 당나라군을 격파하면서 중앙아시아 전 지역으로 이슬람이 확산됐다. 한편 이 지역은 천연가스·석유·석탄이 대량 매장된 자원의 보고다.

중앙아시아는 유라시아 스텝(나무가 없는 초원지대)의 중심지역으로 동서 문명교류의 관문이었다. 이 지역에서 살아온 북방 민족들은 한민족과 생활·문화·언어적으로 많은 공통분모와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 선사시대 한민족의 출발점도 중앙아시아 일대로 추정되고 있다. 고대로부터 초원 실크로드와 오아시스 실크로드를 통해 이들이 오간 흔적들이 무수히 남아 있다. 무덤·유물 등은 물론 풍습과 언어 등에서도 확인된다. 역사시대에 들어서는 동서 문명의 교역로인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인 한반도에서도 신라·발해·고려 시대에 이미 실크로드의 소그드인 등을 통해 중앙아시아와 교류해온 흔적이 역력하다. 근세사에서도 중앙아시아에는 한인(고려인) 17만여명이 1937년 강제 이주된 지역으로 지금도 30만명 이상이 살고 있다. 중국·미국·일본 다음으로 많은 한인이 사는 곳이다.

탐갈리 유적지 암각화


탐갈리 유적지 관리인과 함께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김병화박물관에 전시된 이주 초창기 고려인의 모습이 담긴 사진.


구르에미르 지하의 티무르 실제 관, 사마르칸트


◇실크로드의 중심축 우즈베키스탄=우즈베키스탄은 면적 44만7,000㎢(우리나라의 약 4.5배), 인구 3,000만명의 수니파 이슬람국가다. 15세기 중엽 몽골제국 일원인 킵차크한국 붕괴 이후 그 일족이 중앙아시아에 진출해 형성된 우즈베크족이 주류이나 고려인(17만 5,000명) 등 130여개 소수민족도 함께 있다.

수도 ‘타슈켄트’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서쪽으로 약 1,000㎞ 떨어진 호라즘의 역사도시 ‘히바’에 도착했다. 오아시스 실크로드의 요새이자 교역소였던 히바는 중앙아시아의 진주라고 불린다. 11세기에서 13세기까지 ‘호라즘샤왕조’의 수도였고 16세기에는 ‘히바한국’의 수도가 되었다. 극도로 건조한 기후 때문에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방문객들을 역사 속으로 이끈다.



거대한 흙벽돌 성곽 ‘이찬칼라’ 성문은 마치 타임머신의 입구를 연상시킨다. 성문 안에서는 수백 년 전의 역사가 전개된다. 걸어서만 다니는 정말 매력적인 고대 도시다. 45m 높이의 초대형 ‘호자 미나레트’, 미완성인 아름다운 ‘칼타 미나레트’, 중앙아시아 최고의 회교사원인 ‘주마 모스크’, 궁전, ‘마드라사(신학교)’ 등 즐비한 유적들이 옛 영광을 웅변하고 있다.

다시 실크로드의 중심 도시 ‘부하라’로 이동했다. 수많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고색창연한 모습을 간직하며 2,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다. 이 도시는 몽골 제국에 의해 철저히 파괴됐으나 티무르제국 시대에 부활했고 이후 부하라한국 시대에도 수도였다. 시간이 멈춘 도시답게 시내 곳곳에는 과거의 영화를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차슈마 아유브’에서는 신비한 샘물이 솟아나고 있는데 한쪽에 순례자의 무덤이 있고 북방 문화의 상징인 ‘솟대’가 서 있어 실크로드 문명 교류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준다. ‘아르크성’에는 사원·광장·감옥·박물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1만2,000여명이 예배를 보던 웅장한 규모의 ‘칼리안 모스크’에는 부하라의 상징이자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미나레트(첨탑)가 우뚝 서 있는데 옛날에는 밤이 되면 불을 밝혀 사막의 등대 역할을 했다고 한다. 부하라에는 예전에는 카라반의 숙소인 ‘카라반사라이’가 곳곳에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다음 목적지인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의 중심 도시이자 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매력적인 도시이다. 기원전 5세기경 소그드인들이 오아시스가 있던 아프라시아브 언덕에 도시를 건설한 후 수많은 외침을 받아왔다. 티무르는 이 도시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원정 때마다 건축가와 예술가를 데려왔다. 지금도 이 도시는 티무르가 좋아했던 ‘푸른색의 도시’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놀라운 천문학 수준을 보여주는 울루그 베그 천문대는 티무르의 손자 울루그 베그가 건설했다. 천문학에 정통한 천재적인 학자인 그는 ‘사국사’라는 칭기즈칸 왕가가계의 역사를 밝히는 놀라운 책을 저술한 역사학자이기도 하다. 인근에 있는 ‘구르 에미르’는 티무르가 지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능묘인데 관람객들은 지상에 있는 모형관만 볼 수 있을 뿐 지하에 있는 실제 티무르의 관(사진)은 공개되지 않는다. 우즈베키스탄 측의 호의로 구르 에미르의 지하까지 내려가 티무르의 실제 무덤을 볼 수 있게 됐고 그때 사진이 남아 있다. 아프라시아브 박물관에는 7세기 영주의 궁전에서 발견된 벽화가 있는데 그 벽화에 고구려인으로 추정되는 사신 두 명의 모습이 등장한다. 당시 한반도와 실크로드 사이에 교류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생생한 증거다. 한편 고구려의 벽화에서도 중앙아시아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는 고대로부터 한민족과 교류했다는 추정을 할 수 있게 한다. 다음은 사마르칸트의 심장이자 실크로드의 상징적인 건축물인 레기스탄 광장에 다다랐다. ‘레기’는 모래, ‘스탄’은 땅이라는 뜻이다. 실크로드의 옛 명성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외에도 사마르칸트에는 수많은 기념비적인 유적들이 실크로드의 영광을 말해주고 있다.

◇중앙아시아 대초원의 나라 카자흐스탄=카자흐스탄은 면적이 중앙아시아 전체의 절반 이상인 272만㎢이다. 인구는 1,820만명으로 카자흐인·러시아인 등 120여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다종교국가다. 고려인 등 한민족도 10만명 이상 살고 있다. 카자흐족은 우즈베크족 일파가 카자흐스탄 지역에서 독립민족으로 자리 잡아 역사가 시작됐다. 이들은 대부분 유목 생활을 하던 사람들로 수니파 이슬람을 받아들였으나 유목민의 관습과 정서를 오래 유지해왔다. 석유 등 자원이 풍부해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다.

수도는 북부의 ‘아스타나’이지만 최대도시는 ‘알마티’다. 초원 실크로드의 한가운데 있는 알마티는 작은 마을이었으나 제정러시아의 군사요충지로 급성장했다. 교통·산업·문화의 중심지이며 톈샨산맥에 자리 잡아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시내에서도 만년설에 덮여 도심을 감싸고 있는 산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도시 인근에 높이 3,163m의 톈샨이 있는데 심불라크라고 부른다. 정상까지 4.5㎞ 길이의 곤돌라가 설치돼 있다. 기후변화가 매우 심해 곤돌라가 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하나 필자는 마침 좋은 날씨를 만나 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만년설산의 위용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알마티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170㎞ 떨어진 곳에는 유명한 탐갈리 유적지가 있다. 이곳에서 1957년 대규모 암각화군이 발굴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황량한 들판을 세 시간 이상 달려 유적지에 도착했다. 길 찾기가 만만치 않아 어렵게 목적지에 당도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표지판을 지나니 입구에서부터 유목민들의 삶과 정서를 보여주는 다채로운 바위그림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발굴된 것만 5,000여점이 넘는 이 그림들은 청동기 시대부터 이곳에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는 역사적인 자료다.

암각화는 선사 고대인들이 생활과 신앙을 바위에 그려 남긴 그림들인데 유라시아 대초원 일대에서 다수 발견되고 있다. 한반도에서도 울산 대곡리 및 천전리 등 15군데 이상 발굴됐고 유라시아 대초원의 암각화와 연결고리가 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도 북방 초원 지대의 암각화에서 나타나는 그림들과 유사한 점이 많다. 동북아역사재단이 탐갈리 등 카자흐스탄 동남부 지역 13개 암각화 유적지를 조사한 후 보고서를 통해 한반도 선사와 고대 문화와 중앙유라시아 문화 사이에 친연성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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