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시각] "억울하면 출세하라" 했던가

김광수 증권부 차장





조선 시대에 장원급제가 그랬던 것처럼 부모님은 아들이 고시를 패스해 판검사나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셨다. 쉽게 무시하는 사람도 없고 공직에서 물러나도 챙겨주는 자리가 많아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을 거라고 하셨다. 고위직 출신이 각종 기관·협회에서 수억 원대의 연봉을 받거나 적어도 민간기업의 사외이사로 최소 수천만 원은 어렵지 않게 버는 것을 보면 뒤늦게 후회가 되기도 한다.

기업의 사외이사는 대주주와 관련 없는 인사들이 대주주의 독단 경영과 전횡을 막고 기업을 건전하게 발전시킬 목적으로 도입됐다. 기업경영에 폭넓은 조언과 전문지식을 제공함으로써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지만 한편에서는 이를 두고 ‘재계의 전관예우’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상당수 기업의 사외이사에는 검경·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 등 사정기관에서 일했거나 정부부처 장·차관, 국회의원 출신들이 대거 이름을 올린다. 이들은 비상근으로 연간 10~20회 정도 회의에 참석만 해도 여느 샐러리맨 못지않은 보수를 챙긴다. 올해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이 주요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선임될 예정이다.



물론 이들은 해당 분야에서 수십 년간 일한 전문가들이다. 변호사·회계사·세무사 등의 자격을 갖춘 경우도 많지만 과연 해당 기업이나 관련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의문이 생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히려 과거의 경력을 바탕으로 기업에 문제가 생겼을 때 방패막이 역할을 하려는 의도로 영입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들게 한다. 이사회에서 실제로 회사에 문제가 생겼음에도 바로잡지 못하고 대부분의 안건에 찬성표만 던지는 사례를 흔히 본다. 대신경제연구소·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같은 기관들도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있고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은 실제로 최근 주총에서 독립성이 결여되거나 감시의무를 소홀히 한 인사의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지고 있다.

일례로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인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난 2014년부터 효성(004800)의 사외이사를 맡아왔다. 문제는 효성이 그 후 분식회계를 저지른 것이 드러났음에도 그를 비롯한 사외이사들은 아무런 책임 없이 임기를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채이배 바른미래당(당시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해 효성이 최 전 장관을 사외이사로 재선임하자 “공인회계사회의 장이 분식회계로 임원의 해임권고를 받은 효성의 사외이사직을 재차 맡겠다는 발상 자체가 부적절”하다며 자진사퇴하라고 공개 비판했다. 국민연금도 최 전 장관의 감독의무 소홀을 이유로 그의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주총에서는 안건이 그대로 통과됐다. 최 전 장관의 사외이사 임기는 내년으로 끝나는데 효성은 올해 주총에서 최 전 장관을 2년 임기의 감사위원으로 신규 선임할 예정이다. 효성의 사외이사는 지난해 기준 1인당 평균 5,4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이런 것을 보면 어릴 적 부모님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억울하면 출세해라.” 지나고 보니 어른들 말씀은 틀린 것이 없다.
/bright@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