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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세편살] 20대가 열광하는 '다꾸'를 아시나요

디지털 홍수 속 아날로그의 반격

저렴한 비용으로 행복 누리는 ‘소확행’

SNS 공유 통해 차별화된 감성 자랑하기도

쏟아지는 다꾸 용품 속 시장도 급성장

지재권 침해, 블랙마켓화 등 문제점도 나와

■복세편살(복잡한 세대 편견 없이 살펴보자)

<1> 다꾸에 빠진 1020… 종이의 특별한 귀환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 시대를 맞이하면서 ‘종이의 종말’을 걱정했습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면 더이상 종이가 필요 없는 시대가 올 거라는 우려였죠. 하지만 최근 종이는 특별한 모습으로 부활하는 중입니다. 20대를 중심으로 다이어리 꾸미기, 일명 ‘다꾸’가 유행하며 스티커 제작과 인쇄업체, 문구 유통업자들이 뜻밖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인데요.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신(新)산업이 최소 100억원 규모는 되리라 추정합니다. 실제 20대 한 여성은 직접 만든 캐릭터로 메모지와 스티커 등을 제작해 월 수익 1,000만원을 너끈히 올리고 있다고 하는데요. 네이버 스토어팜만 찾아봐도 판매 금액이 4,000만원 이상인 ‘빅파워’ 판매자들이 최소 수백 명은 보이니 생각보다 산업 규모가 더 클 수도 있을 듯합니다.

교보문고 핫트랙스는 ‘다꾸’ 열풍에 불을 붙이듯 다꾸 전용 코너를 신설했습니다. 핫트랙스 측에 따르면 연간 매출이 수십 억원대에 이른다고 합니다.




■90년대와는 사뭇 다른 ‘다꾸’의 유행… 핵심은 ‘꾸미기’

기성세대에게 ‘다꾸’의 유행은 조금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다꾸’ 문화 자체는 크게 변한 게 없습니다. 19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냈던 분들도 한때 ‘다꾸’에 열중했고 2000년대 초반에도 관련 온라인 카페가 번성했거든요. 그때 학생들도 지금처럼 예쁘게 디자인한 스티커 파일을 공유하고 프린터로 뽑아 수제 스티커를 제작하기도 했답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런 놀이가 놀이로 그치지 않고 ‘시장(market)’을 형성했다는 것이겠죠. 지금은 스티커를 디자인해 친구와 나누는 것을 넘어 인쇄소 업체에 맡겨 제작한 뒤 대중에게 사고팝니다. 이런 제품을 일명 ‘인스(인쇄소 스티커)’라고 부르는데 유명한 캐릭터나 상업적 디자인뿐 아니라 개인이 그린 엉성한 캐릭터들도 불티나게 팔립니다. 누군가는 ‘그리다 만 듯한 그림들’이라 표현할 캐릭터들이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기도 합니다.

다양한 스티커를 다꾸에 활용하려는 20대가 늘어나며 2000년대를 강타했던 6공 다이어리도 다시 등장했습니다. 6공 다이어리가 등장했다면 차별화된 ‘속지’도 나오기 마련이죠. ‘다꾸’ 열풍은 이렇듯 숱한 종이상품을 우리 품으로 돌려놓았습니다.

북팔코믹스의 주최로 열린 ‘서울금손페스티벌(서금페)’의 현장 사진입니다. 서금페는 언제나 인파로 북적입니다.


■성장하는 ‘다꾸’ 시장… 프랜차이즈도 등장해

약 2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다꾸’ 열풍은 ‘다이어리’가 아니라 ‘꾸미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도 과거와 사뭇 다릅니다. 교보문고 핫트랙스, 텐바이텐, 다이소 등 주류 문구 업체들은 모두 스티커나 속지 등의 상품을 선보이는 ‘다꾸’ 코너를 신설했습니다. 매출도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교보문고 핫트랙스에 따르면 지난해 스티커나 마스킹테이프 등 다꾸용품의 매출액과 종류 수가 2016년 대비 각각 85.4%, 127.7% 성장했다고 합니다. 텐바이텐 측도 “6공 다이어리와 관련된 상품 코드가 생긴 게 2016년 무렵이라 과거 매출과 비교하기 어렵다”면서도 “관련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는 건 확실하다”고 말했습니다.

다꾸 용품만을 판매하는 프랜차이즈도 등장했습니다. 예컨대 ‘내맘대로다꾸다꾸’, ‘인스앤슬라임’, ‘까만너구리’ 등의 프랜차이즈는 ‘다꾸러’들의 필수 코스로 떠오르며 자영업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다꾸러들이 ‘다꾸 원정대’를 꾸려 각 매장의 다꾸 코너를 차례로 돌아다니는 현상도 나타났죠.

부산 서면에 위치한 ‘내맘대로다꾸다꾸’ 상점 내부의 모습입니다. 김성웅 대표는 2018년 12월 초 온라인쇼핑몰과 오프라인매장을 오픈했다고 합니다.


인쇄 스티커와 슬라임을 판매하는 ‘인스앤슬라임’ 가게 내부의 모습입니다. 부모들과 학생들이 한쪽에서는 슬라임을 만들고 한 쪽에선 인쇄 스티커를 보고 있네요.


■발 빠른 사업자들 다양한 다꾸 상품 쏟아내

변화는 전통 시장에서도 감지됩니다. 기자가 최근 찾은 서울 종로구 창신동 완구골목은 이른바 ‘다꾸러들의 천국’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즐비한 상점들은 가장 좋은 진열대에 ‘다꾸 세트박스’나 ‘다꾸 패키지’, ‘인스’, ‘떡메’ 등을 배치해두고 호객 행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떡메’란 포스트잇 크기의 메모지 묶음을 부르는 은어입니다.

30년 넘게 창신동 완구시장을 지킨 ‘예지사’의 한 직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인스’와 ‘떡메’의 유행을 체감하셨다고 합니다. 그는 “3월은 다이어리 판매 비수기에도 불구하고 주말이면 초등학생 고객층이 꾸준히 가게를 찾는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또 “원래 스티커는 초등학생들에게 꾸준히 인기를 끈 상품이었지만 이처럼 ‘인스’나 ‘떡메’라는 용어까지 생기며 연중 꾸준히 팔리는 것은 30년 만에 처음”이라며 “연말 연초에 새해 계획용 다이어리가 많이 팔리는 것은 동일하지만 ‘패키지’로 꾸미기 상품이 나온 것도 최근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라고 합니다.

‘다꾸 패키지’를 만들어 파는 ‘크리스탈 팬시’ 관계자 역시 “다이어리와 스티커 수요가 늘어나는 점을 감안해 지난해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10대 초등학생 대상의 패키지를 만들기 시작했다”며 “현재 20여 곳의 거래처와 도매 거래를 하고 있는데 이들이 동네 문방구 등에 소매하는 점을 고려하면 모든 문방구에 해당 제품이 입점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창신동 완구 시장 골목의 한 가게인데요, 초등학생 뿐만 아니라 성인도 문구점을 방문한 모습이 자주 보였습니다. 가게의 앞에는 다양한 다꾸 용품들이 진열돼 있습니다.


창신동 완구 시장엔 ‘다꾸 용품’들을 모아 파는 ‘패키지’ 상품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창신동 완구점의 한 직원분은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설명했습니다.


■20대에게 다꾸란 “나의 개성 표현하는 수단”

다꾸 문화는 10대~20대 사이에서 특히 인기인데 두 세대 간 문화를 소비하는 양상은 조금 다릅니다. 20대는 다이어리 꾸미기를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여깁니다. 비용이 크게 소비되지 않는다는 취미라는 점에서도 긍정적입니다.



일례로 윤혜린(25·대학생) 씨는 경제적으로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예쁘게 꾸밀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니 ‘다꾸’를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여러 DIY 취미 클래스가 있지만 대학생인 자신이 접근하기에 경제적으로 저렴하면서도 예쁘게 꾸미고 싶은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취미는 ‘다꾸’ 였다는 겁니다. 힘들 때는 잘 꾸며진 다이어리를 보며 힘을 얻기도 한다니 ‘일석이조’인 셈입니다. 윤 씨는 “과거 힘들었던 일들을 해결했던 나의 기록들을 보며 위안을 얻기도 하는 것이 일종의 ‘자아 찾기’가 되는 듯하다”고 말합니다.

유시원(26·대학생) 씨는 다꾸하는 과정을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공유하며 행복감을 얻는다고 합니다. 실제 인스타그램에서 ‘#다꾸’를 붙여 공유하는 게시물은 18일 기준 44만 개에 달합니다. 유 씨는 “감각적으로 꾸민 다이어리를 ‘인증’함으로써 나의 감성을 표현하고 ‘좋아요’를 받으면 만족스러운 감정이 든다”며 “이를테면 ‘소확행’인 셈”이라고 합니다.

10대들은 직접 산 ‘래핑지’를 이용해 교환을 위한 ‘봉투’를 만듭니다. 이 봉투는 ‘수봉(수제 봉지)’라고 불리는데요, 안에는 인쇄 스티커, 떡 메모지, 덤(헤어핀, 샤프 등), 편지, 체크리스트 등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10대에게 다꾸란 “갖고 싶고 나누고픈 ‘예쁜 선물’”

반대로 10대의 경우 ‘다꾸’ 용품을 다이어리 꾸미기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예쁜 스티커와 마스킹테이프 등을 그저 소장하기 위한 용도로 삽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초등학생 사이에 화장품이 유행했는데 이들이 진짜 이걸 바르기보다는 파우치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자랑하는 용도로 많이 썼다”며 “이번에는 갖고 싶은 물건의 유행이 스티커와 다이어리로 옮겨 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때문에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런 ‘소장용’ 스티커를 서로 선물해주는 ‘수제 봉지(일명 수봉)’도 인기입니다. 이들은 수봉에 인쇄 스티커와 예쁜 포장지, 떡메, 편지 등을 담아 서로 선물하거나 교환합니다. 부모들 눈에는 쓰지도 않는 스티커를 사달라고 해서 친구에게 줘버리는 ‘쓸데없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소중한 친구에게 예쁜 스티커를 선물하고 또 선물 받는 이런 행위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실제 초등학생인 이 모 양은 “택배가 오면 설레잖아요. ‘안에 뭐가 있을까’ 하면서요. 친구들끼리 교환한 수봉을 열면서 설렘을 느끼고, 또 제가 만든 수봉에 친구가 행복해할 걸 생각하면 즐거워요.”라고 말합니다. 최근 유튜버들이 선보이는 ‘언박싱(박스를 풀어보는 행위)’이 생각나네요.

초등학교 6학년 ‘문구 덕후’를 자처하는 이 모양이 1년간 모은 인쇄스티커를 책상 위에 나열하며 보여주고 있습니다. 100여개가 넘는 인쇄 스티커를 책상에 진열하면서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스티커가 있다”고 말하며 책상 공간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친구들과 교환했던 떡 메모지는 올려 놓지도 못했습니다.


한적한 충무로 인쇄소 골목의 모습입니다. 상인들에 따르면 일부 업체는 인쇄 스티커 물량을 뺏겨 문을 닫기도 했다고 합니다.


■다꾸 열풍 전통 인쇄소 부활로는 연결 안 돼

다만 이 같은 ‘다꾸’ 열풍이 전통적 인쇄 기업들의 부흥으로는 이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쇄 스티커를 제작·판매하는 작은 업체만 해도 일주일 기준 대략 100만 장의 물량을 맡기지만 이들이 인쇄를 맡기는 곳은 서울 충무로나 을지로 등의 인쇄소는 아닙니다. 다꾸로 인한 뜻밖의 호황은 ‘유행’에 발 빠르게 적응한 일부 업체들만이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문구 스타트업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인스를 제작해 파는 사업자들이 모이는 ‘서울금손페스티벌’ 등이 있는데 이곳에서 만난 충무로 인쇄소 관계자가 오히려 ‘여기는 대체 뭐 하는 곳이냐’고 물은 게 기억난다”고 했습니다. “인쇄 스티커는 우리(충무로 인쇄소)도 만들 수 있는데 이런 상품이 이렇게까지 잘 팔리는지 미처 몰랐다”는 겁니다.

기자가 충무로에서 만난 한 직원도 “인쇄 스티커 인기는 알지만 이런 제품은 단가를 낮출 수 있는 파주나 고양 쪽의 대형 인쇄소들이 주로 한다”며 “우리도 단가를 낮춰 해보려고 해도 정보나 판매처 등을 잘 몰라 접근하기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충무로와 을지로의 인쇄소는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고 합니다. 문 닫은 자리는 카페나 술집 등이 메우고 있죠.

소규모 사업자가 많은 틈새시장이다 보니 무면허 사업자들이 판을 치는 것도 ‘다꾸’ 시장의 문제로 지적됩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누구나 외주를 맡겨 스티커를 제작·판매할 수 있고 10대 소비자들이 주를 이루는 구조”라며 “문제는 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캐릭터를 훔치기도 하고 택배로 상품을 보내고 우편으로 현금을 받는 식의 거래를 하며 시장을 암시장처럼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기자가 직접 꾸민 다이어리입니다. 몇 개 사본 스티커로 일상을 기록하고 꾸며보니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겨야 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아날로그 VS 디지털, 승자는 누구?

‘다꾸’ 역시 결국 디지털이 흡수해 곧 유행이 끝나리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실제 최근 아이패드 등 태블릿PC를 이용해 다꾸를 시작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하네요. 결국 디지털은 모든 아날로그를 흡수할까요.

답을 찾아보기 위해 기자가 직접 다이어리를 꾸며 보았습니다. 잠시 스마트폰은 옆으로 치워두고 책상에 오랜만에 앉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방,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1주일을 되돌아보며 한 자 한 자 꾹꾹 써내려갔습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알록달록 다양한 스티커를 이용해 꾸미며 소소한 행복도 느꼈습니다. 비록 ‘감각적’이고 ‘잘 만든’ 다이어리는 아니었지만 해 놓고 보니 뭔가 뿌듯하네요. 언젠가는 ‘다꾸’를 잊고 다시 스마트폰만 들여다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무언가를 직접 써내려가는 이 느낌이 퍽 좋습니다.

캐나다의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색스는 자신의 저서 ‘아날로그의 반격’을 통해 최근 20대 사이에 불고 있는 ‘뉴트로(새로운 복고)’ 현상이 복고의 귀환이라기보다는 디지털 문명의 반동이라고 해석한 바 있습니다.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아날로그가 더욱 재미있고 가치 있는 문화라는 것입니다. 기자의 경험에서 볼 때 ‘다꾸’ 역시 일종의 아날로그 반격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도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등 디지털 문화가 가속화되리라 생각되는 상황에서 ‘다꾸’ 유행이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정윤 인턴기자 kitty419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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