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한테는 힘든 유치원이네요. 친정엄마도 두 손 드셔서 결국 종일반 유치원으로 옮겼어요.’
내 눈이 흠칫한다. 어린이집에 다니던 첫째 딸이 유치원에 ‘당첨’됐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다. 맘 카페에 ‘OO유치원+워킹맘’으로 검색한 글을 읽을수록 마음은 어두워졌다. 내가 아이를 보낼 유치원은 셔틀버스를 타야 하고 오후1시30분에 끝나는데다 각종 학부모 교육과 참여 활동이 많다고 알려진 곳이다. 그동안 아이가 다녔던 어린이집이 집 앞에 위치한데다 오후3시30분에 끝났고 1년에 한 번만 공식적인 부모 참석 일정이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기사가 터지면 아침 일찍 확인 전화를 돌려야 하고 툭하면 저녁 약속이 있으며 뱃속에 7개월 된 둘째를 가진 워킹맘에게는 현실적으로 동네 어린이집이 나은 선택지였다.
하지만 남편 생각은 달랐다. 어린이집은 보육 위주지만 유치원에 가면 더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리라는 기대가 컸다. ‘하필’ 같은 구에 전체 원생만 240명에 5~7세 합반이면서 정통 몬테소리 교육을 하는 유치원이 떡 하니 있었다.
아이를 돌봐주는 친정부모님은 애가 멀리 버스를 타느라 피곤하고 사고가 날 수 있으며 국공립 어린이집이나 민간 유치원이나 실상은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아이와 주 양육자인 친정부모님에게 익숙한 어린이집이 나은지, 아니면 인성교육으로 아이가 성숙해진다는 유치원에 보낼지 갈팡질팡했다.
나는 ‘어차피 떨어지겠지’라고 생각하며 유치원에 원서를 넣었다. 웬걸, 당첨되고 말았다. 일단은 버스 정류장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맘 카페에서 우리 집 주변에 사는 엄마 4명 정도를 찾아 기본 인원은 확보했고 유치원에서도 집 근처로 정류장을 늘려줬다.
어린이집을 주장하셨던 친정부모님도 마음을 돌려 오후1시30분에 아이가 하원한 후 돌봐주기로 하셨다. 사실 어린이집과 친정어머니는 다툼이 있었다. 덜렁거리는 내가 준비물을 못 챙긴 것도 어린이집에서는 모두 할머니 탓처럼 몰아갔고, 그래서인지 은근히 전업 맘 아이를 선호하는 듯한 태도도 있었다. 어린이집은 조부모나 도우미가 키우는 아이는 아무래도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그 점은 나도, 친정부모님도 일부 인정했다. 미운 4~5세 아이들을 한꺼번에 돌봐야 하는 선생님도 왜 화가 나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이가 실수하거나 잘못한 일을 다른 친구가 보는 앞에서 타박하는 모양새를 부모님은 무척이나 싫어했다.
결국 유치원에 등록했지만 유치원에서는 학부모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루 한 시간씩 사전교육을 엿새나 실시했다. 대강은 알고 원서를 넣었지만 실제 닥치니 원망스러웠다. 한 번은 남편이, 한 번은 내가 갔다. 나머지는 친정부모님이 가셨다. 아이는 유치원이 끝나도 남아 있는 나를 보고 너무나 행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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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서는 유아기가 아이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을 위해 유치원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르치는지, 그 연장인 집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맞벌이 부모라 힘들겠지만 그만큼 부모가 돼 아이를 키우는 일이 중요해서 모셨다’는 원장선생님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일단 기관에 보내면 보이지 않게 신경 쓸 게 많았는데 나는 대부분 그저 넘겼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매일 이런저런 일을 겪는다. 어떤 날은 아이가 즐거워하지만 많은 날은 의기소침하다(고 친정어머니가 전해주셨다). 나는 오후에 아이를 데려온 적이 없으니 어린이집에서 나올 때 아이의 표정, 유치원 교사의 말 한마디, 엄마들을 통해 듣는 내부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난 후에야 ‘만들기 시간’이 공포의 대상임을 알게 됐다. 몇몇 엄마들이 손으로 만든 과자를 하나씩 포장해 어린이집에 보냈다는 것도 나중에 들었다. 어른 눈에는 별일 아니었지만 아이에게는 큰일을, 엄마인 나는 아무런 대책이나 준비 없이 흘려버린 셈이다. 다행히 새로 보낸 유치원은 ‘엄마 간식 금지령’이 있었다.
처음 어린이집에 갈 때 아이가 머리 묶는 것을 싫어해서 그냥 보낸 적이 있었다. 나중에 한 강연에서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이 ‘머리 묶지 않은 아이는 학대당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후부터 머리는 서툴게나마 꼭 묶어 보냈다. 어린이집도 단체생활을 하는 곳이라 규율을 지키려 한다고 느끼면서.
진짜 걱정은 둘째를 낳고 복직한 후다. 일단 유치원 정류장 근처에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에 둘째를 넣자는 목표를 세웠다. 둘째는 ‘친정부모 찬스’도 쓰지 못하기 때문에 도우미를 구해야 하는데 저녁 회식이 잦은 우리 부부가 같은 날 회식이 잡힐 때는 어찌해야 할지, 도우미를 고용했을 때 겪을 크고 작은 마찰은 풀 수 있을지, 친정어머니도 아닌 도우미가 보는 둘째는 어린이집에서 어떤 지적을 들을지도 남은 숙제다.
2년여를 겪어보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고 선생님이 아이에 집중할 수 있게 했으면 한다. 보건복지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시에 따라 선생님이 손으로 쓰는 서류작업이 많다고 한다. 그것을 줄이고 전달사항은 말이나 쪽지가 아닌 단체 문자로 알려줘도 좀 나을 것 같다. 내가 보낸 어린이집은 5세 어린이 21명을 한 공간에 두되 선생님 3명이 운영했다. 현행법으로 가능한 일이나 선생님 입장에서는 다른 선생님 신경이 쓰이고 반이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한 명이 봐야 하는 아이가 많다.
일단 나는 둘째 육아휴직을 오래 쓰는 것으로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을 찾았다. 우리 회사는 대부분 육아휴직과 출산휴가를 합쳐 1년을 쓴다. 하지만 나는 법이 정하고 우리 회사 노사가 합의한 대로 3개월 출산휴가와 1년 육아휴직에 지난번 첫째 때 쓰지 못한 3개월을 쓰려고 한다. 물론 ‘3개월만 있다 나오라’는 부장의 말은 농반진반이라도 부담이다. 육아휴직을 쓰고 싶어도 아빠는 쓸 수 없다는 남편의 회사, 아니 우리 회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기업 문화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정부는 아빠 육아휴직을 확대하기 위해 지원금을 늘리는 추세지만 한 달이라도 엄마 대신 아빠가 의무적으로 육아 휴직을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 같은 제도가 부담스럽다면 각 기업에서 비효율적이고 공사를 구분하기 어려운 회식 문화를 줄이고 근무시간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했으면 한다.
아무튼 당장은 혼자 사회를 바꿀 수 없으니 내가 뻔뻔해지기로 했다. 업무시간에 이 글을 쓰는 것조차도 투자은행 담당 기자인 나는 부원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일도 좋고 아이도 좋으니 미안한 마음은 갖되 포기하지는 않기로 했다. 내가 잘돼야 나중에 내 딸도 당당한 워킹맘이 될 것이고 내 딸 세대가 잘돼야 지금 내 육아휴직이 탐탁지 않은 세대들의 복지 비용도 충당할 테니까.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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