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직접 피 한 방울만 뽑으면 수백 가지 건강 검사를 할 수 있다’
미국 실리콘벨리에 혜성처럼 나타난 벤처 기업 테라노스는 이 같은 캐치프레이즈로 사람들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비싼 의료비에 시달리던 미국인들은 저렴하고 편리하게 질병을 발견 및 예측할 수 있다는 거짓말 같은 주장에 열광했다. 월그린·세이프웨이 등 미국에만 수천 개 매장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뿐 아니라 미 국방부마저 테라노스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루퍼트 머독,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와 같은 권위 있는 인사들과 투자자들도 테라노스에 돈을 쏟아 부었다.
창업자인 엘리자베스 홈즈는 ‘제2의 스티브 잡스’로 떠올랐다. 2014년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400인을 선정해 발표하는 ‘포브스 400’의 표지를 장식했고, 타임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했다. 기업가치 10조 원까지 육박한 테라노스와 창업자 홈즈에게는 승승장구할 일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축복받은 기술’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전부 사기였다.
홈즈, 잡스 꿈꾸며 테라노스 설립
“피 한방울로 수백가지 건강검사”
美 전역 열광…국방부와도 계약
한때 기업가치 10조원 달하기도
의심 품은 WSJ 기자 비리 추적
광기어린 욕망·사기행각 파헤쳐
테라노스의 비밀을 파헤쳐 무너뜨린 이는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의 탐사보도 기자 존 캐리루였다. 신작 ‘배드 블러드’는 그가 테라노스의 성장 과정부터 몰락까지 구석구석 파헤친 책이다. 웬만한 영화나 소설보다 더 허구처럼 느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책은 지난해 뉴욕타임스와 아마존에서 장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캐리루는 테라노스를 퇴사한 직원 60명을 포함해 약 160명의 용기 있는 내부 고발자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홈즈와 회사의 운영진들이 저지른 각종 비행을 샅샅이 파헤쳤다. 테라노스는 미국 최고의 로펌을 앞세워 그를 협박하고, 감시와 미행까지 불사한다. 하지만 캐리루는 끈질기게 취재해 2015년 10월 테라노스의 비밀을 세상에 폭로하게 된다. 기술에 심각한 결함이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사용할 수 없을 만큼 부정확해 다른 회사의 기기를 몰래 이용해 왔다는 것이다.
테라노스는 기술도 기술이지만 미모의 젊은 여성 창립자 홈즈로 인해 더욱 주목받았다. 미 명문 스탠퍼드대에서 공부했으며 명문가의 자제였던 홈즈는 달변가에다 의욕도 넘쳤다. 하지만 캐리루가 전하는 여러 에피소드는 기괴하게 느껴질 정도다. 홈즈는 숭배하던 잡스를 닮기 위해 전 아이폰 직원들을 스카우트했고, 잡스의 유명한 복장과 일상까지 그대로 흉내 냈다. 그를 따라 검은 터틀넥에 검은 바지를 입고 하루 종일 똑같은 음식물을 섭취했다. 또 편집증이 의심될 만큼 보안에 집착했고 대표인 자신만이 정보를 독점하기 위해 부서 간 소통을 아예 금지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테라노스의 각 부서는 자기가 맡은 분야만 알 수 있을 뿐 기기의 시스템 자체를 실험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홈즈는 직원들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그 자리에서 해고하고 테라노스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해서는 안 된다는 비밀 유지 서약에 서명하라고 강요했다.
저자는 홈즈에 대해 “선의의 조언을 듣지 않고, 절차나 원칙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야망은 탐욕스러웠고 간섭을 용납하지 않았다. 부와 명예를 얻는 길에 부수적인 피해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평가한다. 그의 말처럼 테라노스의 몰락은 어린 시절부터 ‘억만장자가 되겠다’고 말하던 한 소녀의 욕심이 성공해야만 한다는 ‘광기’로 변하면서 초래된 결과였다. 1만 6,000원.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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