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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최초의 전투와 인류 최후의 전쟁

기원전 1457년 메기도 전투





전쟁과 평화. 인간의 본성은 어디에 속할까. 견해가 엇갈린다. 인간의 천부적인 권리를 주장한 사회계약론자들의 견해부터 다르다.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늑대의 심성을 지닌 인간이 만인을 상대로 싸우는 전쟁 상태가 태초의 자연 상태라고 봤다. 반면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통해 ‘자유롭고 평등한 자연 상태가 소유욕으로 무너졌다’고 여겼다. 어느 것이 맞든 확실한 것은 한 가지다. 태초 이래 인간은 무수한 전쟁을 치러왔다는 사실이다.

기록상 날짜까지 추정이 가능한 최초의 싸움은 기원전(BC) 1457년 4월16일 발생한 ‘메기도 전투’. 이집트와 가나안 땅 일대의 민족들이 맞붙었다. 1만2,000여 이집트군의 지휘는 파라오 투트모세 3세가 직접 맡았다. 이집트는 두려움에 떨었다. 사막부족들이 강인한데다 파라오는 약골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두 살 때 제위에 올랐으나 여왕처럼 행세한 계모이자 고모에게 눌렸던 심약한 파라오는 청년이 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24세(추정)의 파라오는 계모가 죽자 국방정책의 근간을 바꿨다. 방어에서 선제공격으로.



1차 목표는 가나안 일대의 150개 부족 1만여명의 전사가 결집한 메기도. 교통과 무역의 중심이며 군사 요충지였다. 사막을 가로질러 행군한 파라오는 카르멜산 앞에서 결단을 내렸다. 병력 운용이 용이한 공격로 대신 산길을 골랐다. 허를 찔린 가나안 연합군은 전투 즉시 무너졌다. 메기도성 방어전도 7개월 만에 끝났다. 투트 3세는 반란 수뇌부를 처형하던 관습과 달리 살려둔 채 자녀 350명을 인질로 데려왔다. 이집트에서 교육받은 그들은 고향에 돌아가 친이집트정책을 펼쳤다. 평생토록 열일곱 번의 싸움을 모두 이겨 ‘고대의 나폴레옹’으로 평가받는 투트 3세 치하에서 이집트는 왕국에서 제국으로 커졌다. 파라오는 자신의 전공을 수도 테베의 거대한 사원 벽에 상형문자(사진)로 새겼다.

이집트의 승인은 경제력과 첨단기술의 결합. 전차 바퀴에 살을 붙이고 전폭을 늘렸다. 공통 부품을 사용해 교체와 수리도 쉬웠다. 복합궁도 선보였다. 하루에 14톤의 식량과 건초, 물 9만ℓ를 대군에 공급하는 병참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경제력 덕분이다. 지명 메기도는 ‘므깃도’라는 이름으로 성서에도 자주 나온다. 요한계시록(16장16절)의 ‘선과 악이 싸우는 인류 최후의 아마겟돈 전쟁이 시작된다’는 예언의 무대도 메기도다. 기록상 최초의 전투이자 인류 최후의 전쟁으로 예고된 메기도. 역사는 과연 어떻게 흐를까. 전쟁일까, 평화일까.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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