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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 시민단체 휘둘려 좌초 '의료혁신' 변죽만

제주 녹지병원 허가 결국 취소

불허→허가→재불허 우왕좌왕

사회적 비용 낭비·국가신뢰도 하락





국내 첫 외국인 전용 영리병원으로 문을 열 예정이었던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허가가 결국 취소됐다. 4년 넘게 극심한 갈등과 분열을 양산한 녹지병원이 문도 열지 못하게 되면서 투자사인 중국 뤼디그룹이 제주도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아 당분간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17일 제주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녹지병원 개설허가 취소에 대한 청문조서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조건부 허가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제주도가 외국인 전용 병원으로 녹지병원의 조건부 허가를 전격적으로 결정한 지 4개월 만에 녹지병원 개원은 수포로 돌아갔다.

녹지병원의 허가가 취소된 것은 사업자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이 외국인 환자만 받도록 한 조건부 허가를 수용할 수 없다며 개원을 차일피일 미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제주도가 시민단체를 비롯한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우왕좌왕하며 정책적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원 지사 역시 녹지병원 개원을 위해 주민 참여로 진행된 공론조사위원회 불허 결정까지 무시하고 조건부 허가라는 승부수를 띄웠지만 사업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결국 시민단체에 휘둘려 영리병원 사업이 좌초되면서 제주도 입장에서는 향후 법적 공방에 대응해야 하는 부담까지 안게 됐다.

원 지사는 “녹지병원이 개원에 대한 의료법을 위반한 이상 법률과 원칙에 따라 취소 절차를 진행하고 향후 있을지 모르는 소송 등에도 적극 대처해나가겠다”며 “이번 사태와 별도로 의료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제주도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 녹지국제병원이 무수한 논란 끝에 결국 허가 취소라는 결과를 받으면서 영리병원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수면 밑으로 가라앉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영리병원을 추진할 계획이 일절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산업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영리병원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언제든지 논란이 재점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케어’로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는 대형병원들이 영리병원까지 무산되면서 해외 진출로 눈을 돌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내 첫 영리병원을 표방한 녹지병원의 개원을 둘러싼 논의는 지난 2006년 2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별자치도 출범으로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는 권한을 독자적으로 확보한 제주도가 의료관광 활성화를 목표로 내걸면서 영리병원 설립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제주도는 이듬해인 2007년 서귀포시 토평동 일대에 제주헬스케어타운 조성을 확정하고 영리병원 설립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한동안 답보 상태에 있던 영리병원 설립은 2011년 12월 중국 부동산 기업인 뤼디그룹이 투자자로 나서면서 급물살을 탔다. 이어 2015년 뤼디그룹이 녹지병원 운영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을 설립한 뒤 착공에 들어가 2016년 7월 병상 47개에 성형외과·피부과·내과·가정의학과 등 4개의 진료과를 갖춘 녹지병원이 준공됐다.

뤼디그룹은 곧바로 개원허가를 제주도에 신청했지만 영리병원 개원을 반대하는 일부 도민들과 시민단체의 항의가 잇따르자 제주도는 차일피일 허가를 미뤘다. 녹지병원의 개원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찬반 의견을 수렴하느라 시간은 흘러갔고 정책적 난맥상에 소통 부재까지 겹치면서 도민사회의 분열만 가중됐다.

제주도가 17일 개설허가를 취소한 제주 서귀포시의 녹지국제병원 전경. 텅 빈 병원 건물이 황량해 보인다. /연합뉴스


고심 끝에 제주도와 원희룡 지사는 2017년 도민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제주도 숙의 민주주의 조례’를 만들고 공론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듬해 공론조사위가 녹지병원의 개원에 대해 불허 결정을 내리자 도민사회는 또다시 찬반으로 갈리면서 소모적인 논쟁에 빠졌다. 하지만 원 지사가 지난해 12월 외국인 환자 전용으로 녹지병원의 조건부 허가를 결정하는 승부수를 던지면서 국내 첫 영리병원 개원이 성사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뤼디그룹이 조건부 허가에 반발해 개원을 거부하면서 결국 조건부 허가가 취소되는 결과를 맞았다.

녹지병원의 개원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글로벌 관광도시를 내건 제주도의 대외적 신인도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다 녹지병원 투자사인 뤼디그룹이 손해배상을 비롯한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어 향후 한국과 중국 정부의 외교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또 범야권의 잠룡 중 하나로 꼽히는 원 지사 입장에서는 정치적 입지마저 좁아지는 내상을 입게 됐다.

녹지병원 개원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국내 대형병원의 해외 진출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현 정권 내에서 영리병원 추진이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날 이기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녹지병원은 제주도에 국한된 특수한 상황이었다”며 “현 정부는 영리병원을 확대하지 않을 것이고 의료 공공성 강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국내 영리병원 도입이 사실상 물 건너가면서 조기에 해외로 눈을 돌리는 전략을 선택할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차바이오그룹은 올 2월 동남아 3개국에 진출한 싱가포르메디컬그룹을 전격 인수하는 등 해외 진출의 고삐를 죄고 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여론의 눈치만 보느라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우왕좌왕해온 제주도가 무리하게 조건부 허가를 결정했다가 막대한 사회적 비용만 낭비했다”며 “결과적으로 제주도는 도민의 여론도 어루만지지 못하고 글로벌 투자시장에서 신뢰도까지 깎아 먹은 셈”이라고 말했다. /이지성·박홍용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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