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사의 핵심 원칙을 적재적소라고 한다. 유능한 인재(適材)를 적절한 자리(適所)에 배치한다는 것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정언명제다. 인사의 달인으로 불리는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적재적소 원칙은 이제는 틀렸다고 단언한다. 이 전 처장은 “적재적소라면 결국 회전문 인사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자칫하면 위인설관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신 “적소에 적재를 배치해야 한다. 여기에다 ‘적절한 시점(適時)’까지 고려해 인사하면 금상첨화”라고 말했다.
그는 초대 인사혁신처장을 맡은 지 20개월 만에 물러난 뒤 ‘대한민국에 인사는 없다(2017)’는 회고록을 펴냈다.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에는 자신의 인사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공무원 사회가 ‘인사는 있지만 인사관리는 없다’는 실증적 경험을 회고록의 제목으로 뽑았다. 그는 저서에서 “다들 ‘인사가 만사’라면서 인사 결과만 관심 있고 인사 전문가를 키우는 데는 정작 소홀하다. 그래서 정부에 인사는 있되 인사관리는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인사를 그저 자리배치로 인식하는 데 그치고 있는 정부에 체계적인 인사관리 시스템의 개념을 도입하고 정착시킬 필요성을 느꼈다”고 썼다. 그는 “기업은 인사 최고책임자(CHO)를 두는데 공무원 사회는 왜 CHO가 없느냐”고 반문하면서 “정권이 바뀌고 장관이 교체되면 코드에 맞은 인물을 인사총괄자로 뽑으니 공직사회가 인사행정의 전문성을 쌓기 어려운 구조”라고 안타까워했다.
이 전 처장은 재임 시절 1~2년마다 보직을 돌아가면서 맡는 순환보직제가 공무원을 망치는 악습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도 이 소신은 변함이 없다. 그는 “순환보직은 공무원의 전문성을 떨어뜨리고 공직사회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주범”이라며 “공직자가 퇴임 후에도 전문성이 없어 이른바 ‘전관예우’라는 잘못된 관행을 낳았다”고 꼬집었다. 이른바 ‘관피아’의 화근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과거에는 투수를 하면서 타자도 했지만 지금은 둘 다 잘하는 선수는 드물다”면서 “앞으로 공무원 사회는 전문성이 떨어지면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도 이런 여건을 반영해 정부혁신과 인사혁신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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