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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트럼프 최측근의 어두운 세계관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볼턴 통해 본 '트럼프 독트린'은

규칙·규범 없는 맹목적 국수주의

'전쟁·무정부 세계' 인정하는 꼴

(The Trump Whisperer and his dark worldview)





도널드 트럼프의 외교정책은 종잡을 수 없다. 그는 평생 대외정책에 관한 연설을 하거나 글을 쓴 적이 없다. 그러니 그의 세계관이 무엇인지 어떻게 감을 잡을 수 있겠는가. ‘트럼프 독트린’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

트럼프 독트린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 그의 전 안보보좌관 마이클 앤턴은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에세이를 통해 이에 대한 나름의 설명을 제시했다.

앤턴은 트럼프 독트린이 지극히 단순하다고 주장한다.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 순위에 놓아야 하고, 그것이 무엇이건 정직해야 하며,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앤턴이 풀이한 트럼프 독트린의 골자다.

이에 대해 대니얼 래리슨은 ‘아메리칸 컨서버티브’에 보낸 기고문에서 “그건 독트린이 아니라 너무도 평범한 원칙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세상천지에 국익을 앞세우지 않는 국가가 어디 있으며, 어떤 대통령이 자국의 이익보다 ‘글로벌한 이익’을 우선시하겠느냐는 지적이다.

앤턴이 제시한 것은 트럼프가 지닌 세계관의 핵심인 국수주의적 보수주의의 개요에 해당한다. 더욱이 트럼프는 일관성 없고 수시로 마음을 바꾸기 때문에 그의 세계관은 외교 문제를 담당하는 트럼프의 최측근, 즉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인 존 볼턴의 견해를 반영한 것으로 봐야 한다.

볼턴에게는 신보수주의자·구식보수주의자(paleoconservative)·강경보수주의자 같은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사실 고전적 의미에서 그는 인간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지닌 단순한 보수주의자다.

전직 관리가 뉴요커에 밝혔듯이 볼턴은 ‘리바이어던’의 저자 토머스 홉스가 묘사한 질서 없는 삶이 ‘끔찍하고, 야수 같으며, 찌질한’ 이 세계에도 정확하게 적용된다고 믿는다.

볼턴은 국가를 보위하고 국력을 떨치려면 미국은 공격적이고 일방적이며 호전적이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는 9·11 발생 직후 “기본적으로 우리는 우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흑암세력(Dark Side)의 일까지도 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한 딕 체니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듯이 보인다.

일부 외교관들은 실지회복을 원하는 러시아가 미국의 가장 중대한 위협이라고 믿는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보다는 급부상 중인 중국이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이란을 우려하는 외교관들도 더러 있다. 볼턴에게 위협세력은 단지 위에 언급한 국가들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다양한 시점에 쿠바·리비아·시리아와 이라크 등이 미국에 가할 치명적 위협에 관한 불길한 경고를 거듭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적성국의 정권교체를 지지해온 그는 최근 쿠바·베네수엘라와 니카라과에 ‘테러의 삼각지대’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미국은 삼각형의 세 모서리가 모두 떨어져 나가기를 학수고대한다”고 말했다. 볼턴이 그들의 붕괴를 원하는 것은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의 개막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 정권 모두 미국의 힘과 영향력에 저항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를 뒷받침하듯 볼턴은 뉴요커의 덱스터 릴킨스와 진행한 회견에서 “먼로 독트린은 여전히 유효하며 아메리카 대륙은 우리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부류의 보수주의자에게 국익은 그것이 민주주의와 자유 등 고결한 덕목을 지녀서가 아니라 단지 우리에 이득이 되기 때문에 추구할 가치가 있다.

맹목적 애국심의 문화에 기원을 둔 이런 견해는 손쉽게 인종주의로 변형된다.

중국을 상대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와 권력을 다투는 거대한 경쟁자가 백인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국무부 고위관리 키론 스키너의 최근 발언이 좋은 예다. 그에 따르면 “소련과의 경쟁은 어떤 의미에서는 서방 가족 간의 다툼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냉전은 실존적 투쟁이었다. 당시 소련은 그들이 세계의 다른 모든 국가들에 덧씌울 우월한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이념을 지녔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소련이 ‘전체주의 국가’로 불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신흥 경제강국이 국제무대에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표준절차다. 공교롭게도 중국 시스템은 주로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개의 서구 아이디어(western ideas)를 혼합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에서 뉴욕타임스의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중국의 시스템을 ‘마켓-레닌주의’로 적절히 묘사했다.

스키너의 논리로 보자면 나치가 백인이기 때문에 이념적 측면에서 우리는 중국보다 히틀러와 더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 이런 논리는 역사적으로 무지하고 도덕적으로는 기괴하다.

체니-볼턴의 세계관이 지닌 보다 실질적인 문제는 그것이 근본적으로 부정확하다는 점이다. 세계는 그렇게 끔찍하고 야만적이며 찌질하지 않다. 지난 100년 사이에 삶의 질은 측량이 불가할 정도로 개선됐다.

전쟁·내전과 테러 등 정치폭력에 의한 사망자 수는 곤두박질쳤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상호 협력하고 평화롭게 경쟁하며 전쟁의 비용과 혜택을 저울질하는 유전자가 인간에게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볼턴은 먼로 독트린에 ‘루스벨트 따름정리(Corollary)’를 발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서구 어느 곳에서건 미국은 일방적으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예멘에서 이란이 벌이고 있는 일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는가.

규칙과 규범이 없다면 미국은 이 같은 모든 노력을 무력으로 진압하거나 아니면 전쟁과 무정부주의가 판치는 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알다시피 국수주의자들의 자기 주장은 우리가 그것을 실행할 때 효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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