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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14> 보조금 줄이지만...인프라 확대로 '자동차 굴기' 도약대 삼는다

■갈림길에 선 中 전기차 산업

경기둔화·정부 환경규제 악재, 中 자동차 판매 마이너스 성장

기술력 확보·막대한 지원 바탕 새로운 동력으로 전기차 가속

돈 노린 이름뿐인 업체 우후죽순 "경쟁 격화로 조정 필요" 우려도

지난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상하이모터쇼’에 한 중국업체가 만든 전기차 차대가 전시돼 있다. /AFP연합뉴스






“오직 전기만으로(Just Electric)” 지난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진행된 ‘2019년 상하이모터쇼’ 전시장의 폭스바겐 부스에는 이 같은 구호가 걸렸다. 중국 자동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이 전기차에 ‘올인’하고 있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중국 최대의 전기차 업체인 비야디(BYD)는 “오는 2030년까지 (생산하는) 모든 자동차를 전기차로 만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다른 글로벌 메이커들도 모두 신형 전기차들을 선보였다. 세계 경기 둔화로 자동차 시장이 포화상태에 들어선 가운데 새로운 동력으로 전기차 등 신에너지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등장함을 알리는 무대였다.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에서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했던 중국이 ‘자동차 굴기’를 위해 전기차에서 가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정부는 보조금을 비롯해 세제혜택과 공공구매, 인프라 확충 등 대대적인 지원 공세로 전기차 산업을 키워왔다. 과거 옛소련이나 미국·유럽 등과의 합작을 통해 자동차 기술을 배웠다면 전기차와 관련해서는 기술력을 확보했다는 자부심도 있다. 2021년으로 예정된 구매보조금 폐지는 독자기술을 앞세운 본격적인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의 표출로, 중국 전기차 산업에 새로운 도약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은 계속될 예정이다.

중국 자동차 산업은 해외로부터의 기술도입으로 이뤄졌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중국이 처음 자동차를 생산한 것은 1956년이다. 옛소련의 생산기술과 설비를 도입해 1953년 설립된 디이(第一)자동차에서 ‘해방’이라는 4톤 트럭을 만들어냈다. 트럭 등 상용차 위주로 자동차를 생산하던 중국이 본격적인 승용차 생산에 들어간 것은 개혁개방 이후다. 1980년대 주력 분야가 승용차로 바뀌면서 자동차 산업은 눈에 띄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여전한 기술부족의 돌파구가 된 것은 서구기업과의 합작이었다. 이른바 ‘기술과 시장의 교환’이다. 해외 업체들이 자사 브랜드로 중국 내에서 자동차를 생산해 판매하는 대신 중국 기업들은 선진기술을 습득하는 방식이다. 베이징자동차가 1984년 미국 AMC와 합작한 데 이어 상하이자동차는 1985년 독일 폭스바겐과 함께 자동차 생산에 돌입했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중국 자동차 산업을 급속하게 팽창시키는 계기가 됐다. 거대한 인구를 배경으로 자동차 생산·판매량이 매년 100만대씩 늘어나 2006년에는 일본을 추월한 세계 2위로, 2009년에는 미국마저 넘어서 세계 1위로 도약했다.

다만 열악한 기술 문제는 여전했다. 합작을 통한 해외 브랜드의 중국 내 생산은 양측 모두의 불만을 초래했다. 중국으로서는 기술이전이 제대로 되지 않는데다 구형 모델들만 도입된다는 점이 불만이었다. 반면 해외 업체 입장에서는 기술을 빼앗겨 새로운 경쟁상대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중국이 독자 브랜드 확보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2017년 기준 중국 내수시장에서 중국 고유 자동차 브랜드 판매는 43% 정도를 차지했다. 고가 자동차 시장이 해외 브랜드 중심으로 형성된 반면 중저가 시장에서는 중국 브랜드끼리 경쟁하는 구도다.

독자생산이 가능해지자 이번에는 지역할거주의가 자동차 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중국이 사실상 여러 나라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국토가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각 지역이 그만큼 독자적인 정책을 펼치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이른바 지역할거주의다. 특히 자동차 산업에서 최대 난제로 지적되는 사안이다.

중국에서 주요 자동차 업체는 대부분 국유기업인 동시에 지역 업체다. 중국 최대 자동차 업체인 상하이자동차는 상하이를 기반으로 하며 디이자동차는 지린성 창춘, 둥펑자동차는 후베이성 우한에 터를 잡고 해당 지역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 외에 창안자동차는 충칭, 베이징자동차는 베이징, 광저우자동차는 광둥성 광저우로 각각 시장을 나눠 가졌다. 이들 6대 기업이 중국 자동차 생산·판매의 70~80%를 차지한다. 이러한 시장 구도가 형성된 것은 1960년대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키면서 설립한 국유기업을 각 지역에 안배했기 때문이다. 각 지방정부가 보조금을 통해 독자적으로 기업들을 키우는 가운데 다른 지역의 기업은 지원에서 배제한다.



이러한 제한 속에 끝없이 성장할 것 같던 중국 자동차 시장이 지난해 갑자기 멈췄다. 지난해 중국 내 자동차 판매는 2,808만대로 전년 대비 2.8% 감소했다. 중국 자동차 시장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은 28년 만에 처음이다. 올 1·4분기에는 역신장 폭이 더 확대돼 지난해 동기 대비 11.3% 하락한 637만대 판매에 그쳤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중국에서 굴러다니는 자동차는 2억4,000만여대에 달한다. 인민일보 자매지인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자동차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도달한 듯하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중국 자동차 시장에 급제동이 걸린 것은 정부규제와 경기둔화라는 두 가지 악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으로의 차량 집중과 이에 따른 환경오염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도시 정부들은 차량등록을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베이징에서 차량등록은 하늘의 별 따기다.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것이 번호판이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미중 무역전쟁과 경기둔화는 자동차 소비 붐을 확 꺾어놓았다.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중국인들은 불요불급한 소비를 줄이고 있는데 대표적인 품목이 자동차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기차 등 신에너지 자동차가 중국 자동차 산업에 활로가 되고 있다. 중국이 인식하는 신에너지 자동차의 장점은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석유를 사용하지 않을뿐더러 최대 관심사인 미세먼지를 배출하지 않고, 기술력에서도 선진국을 따라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중국의 분류상 ‘신에너지 자동차’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순수전기차(BEV)와 함께 연료전지 자동차 등을 포함한다.

특히 순수전기차 분야는 아직 국제적으로 선도 업체가 없다는 점 때문에 중국 정부의 큰 관심을 사고 있다. 전기차 육성을 위해 중국 정부가 쏟아붓는 예산은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미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지난해 11월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전기차 생산·판매 장려를 위해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보조금, 세제혜택, 인프라 구축, 기타 지원 등에 최소 588억달러(약 69조원)를 지출했다.

가장 직접적인 지원은 정부예산으로 전기차를 공공구매하는 것이다. 전기 시내버스와 택시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광둥성 선전시는 최근 시내버스 1만7,000여대를 모두 전기버스로 바꾸기도 했다. 전기차를 구입하는 소비자들도 혜택을 본다. 대도시에서 자동차 번호판을 얻기 위해서는 추첨이나 경매에 참가해야 하는데 베이징의 경우 확률은 1% 내외다. 하지만 전기차는 거의 100% 당첨된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신에너지 자동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의 지원을 시작한 것은 2009년이다. 2015년에는 ‘중국제조 2025’를 통해 향후 10년간 에너지 절약 전략 및 전기차 발전 방향을 내놓았다. 주요 목표는 산업경쟁력 강화, 산업화 발전, 핵심부품역량 제고, 차량 정보화 및 지능화 실현 등이며 2020년까지 시장 주도, 기업 주체, 산학연 협력의 전기차 산업체계를 건설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다만 일시적으로 자금이 쏠리면서 전기차 시장에도 거품이 생겼다. 이름뿐인 전기차 업체가 보조금을 노리고 우후죽순 생겨난 것이다. 보조금은 중국의 고질적인 부패와도 연결됐다. 2016년 일제점검 결과 보조금을 받은 94개의 자동차 회사 가운데 72개 회사가 92억위안을 거짓으로 챙긴 것이 발각되기도 했다.

일단 중국 정부는 전기차 구매에 지불하는 보조금을 조금씩 줄여 2021년부터는 아예 폐지하기로 했다. 이는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해외 전기차 업체들이 불공정행위라고 비난해온 것이다. 하지만 전기차 구매와 함께 충전소 설치 등 인프라 구축 작업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스젠화 중국자동차공업협회 부비서장은 “여전히 중국 자동차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있다”며 “올해는 첨단기술 장착 자동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특히 신에너지 자동차의 성장 속도가 빠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전기차 업체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민영기업인 비야디다. 광둥성 선전에 본사를 둔 비야디는 1995년 휴대폰 배터리를 주력사업으로 설립됐다. 그러던 가운데 2003년 중소 자동차 업체를 인수하면서 자동차 생산에 들어갔고 이후 자사의 배터리 기술을 접목해 2008년 PHEV를 내놓았다. 2010년에 선보인 순수전기차가 인기를 끌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비야디는 선전 등에서 특혜성 버스 판매를 통해 얻은 이익을 바탕으로 세계 전기버스 시장을 거의 석권했다. 현재 한국을 포함한 세계 50여개국에 전기버스를 공급하고 있다. 대기오염 문제가 심각한 베이징에서 베이징자동차가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는 산하 기업 베이징신에너지자동차도 주목할 만하다.

다만 기업들이 저마다 전기차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데 따른 우려도 제기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전기차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크지만 단기적으로 기업들의 경쟁격화에 따라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조정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베이징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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