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나 친구들 만나고 올게, 애들 좀 봐.”
결혼 8년차. 맞벌이 부부로 아이 둘을 키우는 기자는 주말에 외출하겠다는 아내의 말이 가장 무섭다. 회사와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인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에 ‘주말에 원할 때는 언제든지 나가라’고 말했지만 막상 현실이 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평일에는 가끔 마주하는 아이들이 그렇게 예쁠 수 없지만 엄마 없는 주말에 혼자 육아를 전담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아내가 없는 주말,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아내의 그림자를 느끼는 참회의 시간이다. 일단 아이들의 태도가 바뀐다. 규율이 강한 엄마보다 아빠가 만만한가 보다. “아빠, 편의점 가서 젤리랑 초콜릿 사줘.” “아빠, 휴대폰으로 유튜브 볼래.” 아내가 있을 때는 감히 꺼내지도 못했던 말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한다. 평일에 제대로 놀아주지 못하는 아빠 입장에서는 “엄마에게는 비밀이야”라는 말과 함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아침에 밥을 차려 먹이는 것부터 전쟁이다. 매번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들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아내가 외출하기 전 끓여놓은 국과 반찬을 식판에 떠서 먹이기만 하면 되는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입이 짧아 밥을 잘 먹지 않는 첫째 딸을 설득해야 하고, 밥 한 술 먹고 집안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둘째 아들 녀석을 제자리에 앉혀 끝까지 먹여야 한다. 분명 아이들 밥을 차린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아침식사 시간은 한 시간이 지나서야 끝난다.
가끔 평일에 일찍 들어가 가족들과 밥을 먹을 때 왜 아내가 그렇게 아이들에게 고함을 지르는지 깨달았다. 자기 밥과 반찬을 따로 차리지 않고 아이들이 먹다 남긴 식판의 음식을 부랴부랴 먹는 이유도 알았다. “밥 먹는데 애들 체하게 왜 소리를 질러.” “거지도 아닌데 왜 남은 음식을 먹고 그래.”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아내에게 내뱉었던 말들이 후회되는 순간이다.
아내의 빈자리는 순식간에 엉망이 되는 거실에서도 드러난다. 레고와 퍼즐, 그림 그리기 등 아이들은 끊임없이 놀이의 주제를 바꾼다. 물론 정리는 나중의 일이다. 한 시간 정도만 지나면 거실은 난장판이 된다. 분명 아내는 아이들이 다 놀고 나면 손쉽게 정리했던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치워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원래 있던 자리를 잘 몰라 대충 빈자리에 넣어두는데 가끔 아이들이 자신들의 인형이나 장난감·책 등이 사라졌다며 울먹일 때 난감해진다.
아이들을 씻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섯 살, 네 살인 두 아이는 그렇지 않아도 아내의 빈자리에 힘겨워하는 내게 “엄마랑 씻을래”라며 투정을 부리기 일쑤다. 아이들을 달래며 목욕을 시킨 뒤 옷을 입히고 나면 체력은 방전된다. 이 모든 일을 아내는 어떻게 해냈을까. 주말에 혼자서 하는 육아가 힘든 것은 그만큼 평소 육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워킹맘인 아내가 ‘독박육아’에 내몰릴 때 모른척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졌다.
아빠들이 육아를 할 때 범하는 실수 중 하나가 ‘오늘’과 ‘내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개 평일은 직장 업무나 저녁 약속 등을 이유로 아이와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밤늦게 집에 들어가면 아이는 이미 자고 있다.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며 ‘아빠가 내일은 일찍 와서 놀아줄게’ ‘주말에 아빠랑 같이 놀자’고 속삭이지만 공수표가 되기 일쑤다.
오늘 회사 일로 바빴다면 내일이나 주말에 몰아서 놀아주면 된다는 생각이, 어쩌면 아이와 아빠의 관계에 보이지 않은 벽을 만들었던 게 아닐까. 육아를 아내 혹은 양가 어른들께 맡기면서 가슴 속에 피어나는 ‘죄책감’을 없애기 위한 자기방어 심리일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기자 역시 그랬다. ‘아이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명언처럼 아이에게 내일이란 없다. 오늘을 함께하지 못하면 그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를 뒤집어보면 아빠들이 육아를 함께하는 일이 마음먹기에 따라 쉬울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몸이 힘들더라도,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아이들과 현재를 같이하는 것이다. 주말에만 아빠로 나타나 아이들과 10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하루에 10분 만이라도 아이와 꾸준히 이야기하고 스킨십을 하는 게 더 낫다는 얘기다.
기자는 아내가 독박육아에 벗어날 수 있도록 육아 체크 리스트를 만들기로 했다. 다이어리에 한 주간 아이들과 보낼 시간과 주제를 정하고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찍 귀가하는 날 아이들과 목욕하기 △잠자기 전 10분간 책 읽어주기 △동네 주변에서 킥보드 타기 등 일주일 단위로 계획을 짜고 그날그날 평가하면 된다. 아내와 함께 미션을 수행할 때마다 서로에게 보상을 주고받기로 했다. 힘든 육아를 부부가 함께 게임처럼 대하면 육아 스트레스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제 해보니 효과가 좋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과 횟수가 많아지면 아빠도 추억을 쌓을 수 있다. 아이는 아빠와의 시간을 가끔 찾아오는 이벤트가 아닌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최근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아빠의 육아 참여가 늘면서 지역사회에서 각종 강의를 개설하는 경우가 많다. ‘아빠를 위한 육아 카페’ 등 커뮤니티에 가입해 부족한 육아 정보를 습득하거나 관련 서적을 찾아 읽으면 좋은 아빠가 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러한 노력은 궁극적으로는 독박육아로 고충을 호소하는 대한민국의 엄마들을 응원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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