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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창] 한국 파생상품시장의 단상

최창규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 알파전략팀장




한국은 파생상품 강국이었다. 하지만 여러 사건들로 인해 화려한 시대는 저물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파생상품은 기초자산에 따라 구분된다. 기초자산이 주식이면 주식 파생상품이 되는 것이고 채권이면 채권 파생상품이 된다. 또 거래소 위치에 따라, 국가 상황에 따라 대중적인 파생상품이 달라진다. 원자재와 농산물이 풍부한 중국의 경우 코모디티 파생상품 거래가 활성화돼 있다. 미국은 금융 선진국답게 다양한 파생상품이 상장돼 있다.

한국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은 주식이다. 한국거래소의 파생상품 현황을 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상품이 상장돼 있다. 다만 문제는 유동성이다. 주가지수 파생상품을 제외하면 거래가 활발한 파생상품은 3년과 10년 국채선물 정도에 불과하다. 파생 강국의 이면에는 집중의 묘미가 숨겨져 있다.

한국 주식 파생상품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한국 금융시장은 주식 중심으로 성장이 이뤄졌는데 대표 주가지수인 코스피200을 기초로 한 파생상품이 일찌감치 등장했다. 코스피200 선물은 지난 1996년, 옵션은 1997년 상장됐다. 1999년에는 선물거래소가 설립되면서 좀 더 다양한 파생상품이 나타났고 환율과 금리 파생상품도 이때 상장됐다. 참고로 당시 주가지수 파생상품은 증권거래소, 나머지 파생상품은 선물거래소의 상품이었다.



한국 파생상품은 여러 가지 요인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대박’을 터트렸다. 우선 파생상품의 기초가 되는 주식들의 빠른 성장이다. 국내 기업들의 빠른 성장은 이를 기초로 한 파생상품의 체력을 강화했다. 그뿐 아니라 굵직한 사건들도 한국 파생상품 성장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2001년 9·11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코스피는 무려 12% 이상 하락했는데 행사 가능성이 희박했던 풋옵션(팔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한 옵션)은 무려 500배의 급등세를 연출했다. 2004년 4월의 ‘차이나쇼크’ 그리고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등도 한국 파생상품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대표적 사건이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사건들은 한국 파생상품을 투기상품으로 변질시킨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2011년 이후 파생상품에 대한 금융당국의 행동은 상당히 달라졌다. 먼저 칼을 뺀 대상은 ‘주식워런트증권(ELW)’이었다. 이는 옵션과 유사한 형태의 상품인데 주식계좌에서 소액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이 투기 수요와 맞물리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고강도의 건전화 조치로 ELW 거래는 대폭 축소됐다. 다음 타자는 코스피200 선물과 옵션이었다. 옵션 매수 전용계좌 폐지와 예탁금 및 거래단위 인상, 그리고 사전교육과 모의투자로 투자자들의 진입을 봉쇄했다. 이것으로 한국 파생상품의 화려한 전성시대는 마감됐다.

5월30일 파생상품시장 발전 방안이 발표됐다. 예탁금 면제와 사전교육 및 모의투자 최소화 등이 담겼다. 파생상품에 대한 금융당국의 시선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금융시장에 절대적 선 혹은 절대적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또 금융시장에서 다양성이 결여된다면 득보다 실이 많다는 사실도 중요한 교훈 중 하나다. 한국 파생상품의 숨통을 틔워준 이번 파생상품시장 발전 방안이 무척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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