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신뢰를 떨어뜨리는 전관예우 관행을 없애기 위해 ‘시니어 판사’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정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법원에 근무할 수 있도록, 사실상 정년을 폐지한다는 게 시니어 판사 제도의 목적이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사법정책연구원과 국회입법조사처 주최로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신뢰의 회복방안 심포지엄’에서 모성준 주 네덜란드 대사관 사법협력관은 “지난 40년간 각종 전관예우 방지대책을 도입했지만 중도사직 판사들이 변호사로 개업해 시장에 대거 진입하는 상황에서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면서 “시니어 판사 제도를 도입해 판사들의 퇴직을 최소화하자”고 발표했다. 그는 “미국은 시니어판사가 지방법원 업무의 62.5%를 담당하고 있다”면서 “정년이 지난 판사를 정원 외 시간제 판사로 채용해 풍부한 경험을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법조계가 시니어 판사 도입을 고민하는 이유는 전관예우로 인한 사법불신이 심각한 탓이다. 김제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전관예우 실태조사에 따르면, 판사 중 23.2% 만이 전관예우가 남아있다고 대답했지만, 일반국민의 41.9%, 법조계 종사자의 55.1%는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응답했다. 김영훈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은 “그 동안 ‘예우’를 막기 위해 수임제한 등 각종 방법을 강구했지만 효과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면서 “이제 ‘전관’ 발생을 막거나 최소화하는 방법을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
시니어 판사와 유사한 제도로 2017년 도입된 원로법관제가 있지만, 전관예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원로법관제는 법원장 근무를 마친 고위법관이 1심 단독판사로 돌아가 재판을 맡는 제도로, 정년이 지나지 않은 고위법관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시니어 판사와는 차이가 있다. 특허법원장을 역임한 강영호 서울중앙지법 원로법관은 “원로법관제는 희망자도 별로 없고, 일부 고위법관의 개업을 2,3년 지연시키는 효과 밖에 없다”면서 “정년 이후 판사들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재판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40·50대 판사들의 중도사직을 막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차성안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년 무렵 은퇴한 전관변호사가 문제되는 해외와 달리 한국은 정년을 한창 남겨둔 상태에서 조기사직하고 개업하는 양상이 문제”라면서 “규제 강화로 전관변호사 개업소득을 크게 줄여 조기사직 동기를 줄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 연구위원에 따르면, 변호사 개업에 3~5년 간의 냉각기간을 두는 나라가 대부분이고, 영국은 아예 전관 개업을 금지하고 있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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