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권에 갇힌 코스피를 탈출해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는 개인투자자가 급증하고 있다. 거래세 인하에도 국내 주식 투자는 갈수록 쪼그라들고 자산가들뿐 아니라 2030 재테크 새내기들까지 해외주식 ‘직구(직접투자)’ 열풍에 동참하는 흐름이다. 미래 성장동력이 보이지 않는 국내 기업에 투자하느니 유망한 해외 기업에 베팅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해외투자 열풍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5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3일 현재 국내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매수금액은 91억3,194만달러(약 10조5,017억원)로 집계됐다. 월평균 2조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해외주식 매수금액은 2014년 42억5,000만달러에서 지난해 170억7,000만달러로 5년 만에 4배 이상 늘어났다. 현 추세라면 올해 투자규모는 2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주식 투자액의 70%가 넘는 64억5,000만달러가 미국 주식에 집중됐다. 이어 홍콩 14.2%(13억달러), 중국 6.4%(5억8,000만달러), 일본 4.7%(4억3,000만달러) 순으로 나타났다.
올해 해외주식 매도금액은 81억8,014만달러이며 전체 해외주식 순매수 규모는 9억5,180만달러(약 1조1,000억원)에 달한다. 반면 같은 기간 코스피시장에서는 3배가 넘는 3조6,109억원을 순매도했다. 그만큼 국내 증시가 투자 매력을 잃었고 해외주식을 대안 투자처로 삼았다는 의미다.
개인들은 국내 코스피 대표기업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기아차 순으로 주식을 팔아치웠고 대신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알파벳(구글 모회사) 등 나스닥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지난해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에 이어 올해 역시 MANG(MS·아마존·넷플릭스·구글)으로 대표되는 기술주에 베팅한 것이다.
수수료·환율·세금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음에도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해외 주식 쇼핑에 나서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만큼 수익률이 높아서다. 지지부진한 국내 증시에서 주가가 오르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느니 차라리 불편하더라도 ‘먹을 게 많은’ 해외 직구가 낫다는 것이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올 들어 지난 21일까지 4.1% 상승하는 데 그쳤다. 연중 2,000~2,250포인트 사이에 갇힌 지루한 박스권 흐름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의 증시는 우리나라보다 지수 상승률이 앞선다. 같은 기간 미국 뉴욕 3대 지수인 다우존스(14.5%), 나스닥(21.0%), 스탠다드앤드푸어스500(S&P500·17.7%) 모두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미중 무역분쟁에도 상하이종합지수와 홍콩항셍지수 역시 20.4%, 10.2%의 수익률을 거뒀다.
이렇다 보니 해외 주식 투자 규모는 해마다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개인투자자의 해외 주식 매수금액은 2016년 63억7,000만달러에서 2017년 120억8,000만달러, 2018년 170억7,000만달러로 급성장했다. 올해는 이미 91억3,000만달러를 사들여 연말에는 200억달러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울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주식 쇼핑 상위 리스트 역시 미국과 홍콩 주식이 10위권을 모두 채웠다. 매수금액 1위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CHINA AMC CSI 300 INDEX ETF’였다. 중국 본토에 상장된 우량기업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로 지난해 2위에서 올해 중국 증시가 급등하며 선두로 올라섰다. 올 들어 수익률만 27.95%에 달한다. 2~4위에는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 등 미국 대표기업이 차지했다.
이들 종목 외에도 10위권의 절반이 ETF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위권이던 알리바바그룹·텐센트홀딩스·넷플릭스 등은 올해 순위가 처졌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 주식 초보자가 늘어나면서 단일 종목 직접 투자보다는 부담이 덜한 ETF에 관심이 커졌고 미중 무역분쟁의 영향으로 중국 기업 선호도가 줄어든 결과”라고 해석했다.
투자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국내 주식 시장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코스피 시장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지난해 6조5,486억원에서 올 들어 5조원대로 감소했다. 지난달 말부터 거래세 인하 조치가 시행됐는데도 거래대금은 오히려 이달 들어 4조6,602억원대까지 줄었다.
국내 주식 투자자가 줄어든데다 수수료 평생 무료 등의 조치로 수입이 감소한 증권 업계도 해외 주식 투자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수수료 인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해외 주식 관련 부서를 확대하는 추세다. 신한금융투자의 ‘소수점 주식구매’ 서비스나 삼성증권의 통합 증거금 서비스 등도 고객 유치의 일환이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해외 주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bright@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