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몇 년 전에는 원격의료를 추진하고자 하는 열의가 강했고 범부처 원격의료 기자회견도 했는데 지금은 큰 관심을 보이는 것 같지 않아요. 또 의료계를 자꾸 집단이기주의로만 몰지 말고, 의사나 환자 모두 쓰기 편한 헬스케어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면서 준비하는 게 맞습니다.”
임태환(68·사진) 대한민국의학한림원 회장은 최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의학한림원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인공지능(AI)과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을 볼 때 언젠가 원격의료가 순기능적으로 사용될 날이 올 것”이라고 밝혔다. 개인적으로는 원격의료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과연 지금의 제품이 원격의료를 할 수 있는 수준인지 자문해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울산대 의과대학 영상의학교실 교수 출신으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등을 지낸 뒤 올 초 의학한림원장에 선임됐다.
임 회장은 “정부가 원격의료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한 지난 2013년부터 3년간 보건의료연구원장이었을 때 의료계에 ‘평행선만 달리지 말고 원격의료의 장단점과 위험성을 논의해 한국형 원격의료 연구를 하자’고 했다”며 “증거를 튼튼하게 축적하지 않고 서두르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당시 원격의료를 하면 특정 전자회사를 돕는 것이라는 등의 ‘아니면 말고’ 식 주장도 많았는데 이제는 소모적 논쟁을 끝내고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해 바이오·헬스케어 선진국가를 만드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의사들이 걱정하는 것은 ‘고도의 전문성과 윤리성이 필요한 의료결정권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 진행돼 의료인의 손을 떠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며 “의사들이 밥그릇 빼앗길까 봐 반대한다고 몰아가는 것에 화나고 짜증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정부가 의사의 전문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장치를 만들어가며 ICT와 AI를 이용해 원격의료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격의료가 의사의 전문성을 돕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지 건너뛰고 가겠다고 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원격의료의 효과나 우려에 대한 기존 분석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벽지·오지나 군, 원양어선 등 특수지역을 빼면 우리나라는 교통 등 의료 접근성이 너무 좋다. 땅이 넓은 미국·중국이나 섬이 많은 일본에서 원격의료가 활성화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며 “우리는 원격의료를 해도 엄청난 부가가치가 창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뇨·간질환·심장질환·고혈압 등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규칙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고 의사의 지시대로 약을 잘 먹는 복약순응도가 높아지는 등의 장점은 있겠지만 원격의료가 산업 측면에서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동시에 그는 “원격의료를 하더라도 ‘1·2차 병원이 죽는다’는 의료계의 주장은 기우일 수 있다. 정부도 1차 병원을 중심으로 원격의료를 운영한다고 했다”며 “만성질환자는 1·2차 병원이 바로 하면 되고 응급환자는 상급병원 의견을 받아 환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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