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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인류]광고가 사랑한 폰트 '꼬딕씨' 제작자 김동관 디자이너

'싸이월드' 시절 웹폰트 만들면서 적성 찾아

양질의 폰트 제작 위해 스튜디오 '한글씨' 설립

광고와 영상 업계가 즐겨 쓰는 '꼬딕체' 개발

"사서 써볼 만하다" 소리 듣는 폰트 오랫동안 만들고파

김동관 폰트 디자이너.




휴대폰이나 텔레비전에서 영상을 시청할 때, 카카오톡에 접속해 메신저를 보낼 때 공통으로 쓰이는 게 있다. 바로 ‘폰트’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글자를 펜으로 쓰지 않고 입력하는 게 익숙해진 시대가 됐다. 기계로 쓰는 글자인 폰트는 디지털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최소 단위다. 폰트 디자이너는 폰트 한 벌에 적게는 2,000자에서 많게는 1만1,100자의 글자를 제작한다.

한글 폰트 중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꼬딕씨’. 광고의 80%에 쓰인다고 할 정도다. 꼬딕씨의 아버지는 1인 폰트제작소 한글씨의 김동관(36) 디자이너다. 출판과 영상, 시각문화를 종횡무진 하면서 11년째 한 땀 한 땀 폰트를 만드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쩌다' 폰트 디자이너


김동관 디자이너는 지금 작업 중인 폰트를 포함해 총 8가지의 폰트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김동관 디자이너의 레터링(글자를 그리는 행위) 개인작업.


Q. 어릴 때 꿈은 무엇이었나?

A. 만화가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미대 입시를 준비했다. 대학에 원서를 넣을 때쯤 만화과와 시각디자인과를 동시 지원했다. 그런데 시각디자인과를 넣었던 대학이 더 괜찮아서(웃음) 그곳에 입학했다. 디자인을 공부하다 보니 만화가 외에 다양한 직업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졸업 후 우연한 계기로 2008년 폰트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입사 전에는 폰트 디자인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적응을 잘했다. 폰트 디자인이라는 게 끈기로 승부 하는 일인데 엉덩이가 무거운 편이라 적성에 잘 맞았다.

Q. 폰트 디자인이 중요한 까닭?

A. 요새는 글자 자체가 디자인 되는 상황이 많이 생긴 것 같다. 예전에는 폰트라는 요소가 디자인을 뒷받침해주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주인공으로 활용될 때도 많다. 예를 들어 ‘배달의 민족’ 포스터 같은 경우 그냥 문구 하나다. 문구 하나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이미지가 글자밖에 없다. 폰트가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는 수단이 되면서 업계에서 차지하는 영향이 커진 것이다.

Q. 폰트 디자이너의 역할은?

A. 세상을 둘러보면 많은 시각 정보가 글자로 전해진다 것을 알 수 있다. 폰트 디자이너는 사람들이 정보로부터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적인 재료를 제공해주는 사람이다. 폰트 디자이너가 새롭고 높은 품질의 폰트들을 많이 만들어 제공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의도와 느낌에 딱 맞는 시각 정보를 잘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글씨가 만든 '꼬딕씨'


폰트 디자인 작업 모습.


한글씨에서 처음으로 출시한 폰트 HG씨앗./한글씨 인스타그램


Q. 폰트 회사 한글씨를 설립한 계기?

A. 폰트 회사에서는 프로젝트 매니저가 있고 밑에 그의 수족이 되는 디자인 작업자들이 폰트를 제작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미감이 다 다르기 때문에 기획자가 아무리 콘셉트를 잘 공유한다고 해도 작업자마다 표현 방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폰트는 일반적으로 한글 ‘ㄱ’부터 ‘ㅎ’까지, ‘ㅏ’부터 ‘ㅣ’까지, 또 종성의 ‘ㄱ’부터 ‘ㅎ’까지를 조합해 기본 2,350자에서 많게는 1만1,172자로 이루어진다. 같은 디자이너의 미감으로 만들어져야 글자들이 통일성이 생긴다. 그래서 혼자 양질의 폰트를 만들기 위해 1인 폰트 제작소라고 할 수 있는 독립 서체 스튜디오 한글씨를 2013년 설립했다. 지난해 한해동안 1,500여 곳에서 한글씨가 만든 폰트를 구매했다.

Q. 한글씨 뜻은?

A. 사람을 부를 때 ‘김 씨’ ‘박 씨’ 부르듯 한글 폰트를 만드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한글씨라고 지었다. 또 한 그루 나무가 자라기 위해 필요한 ‘씨앗’의 의미로 ‘씨’를 붙였다. 그래서 처음으로 만든 폰트 이름도 ‘씨앗’이다. 씨앗체는 서예의 흘림체를 가로쓰기 폰트로 어떻게 현대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만든 폰트다.

HG꼬딕씨 제작 초기 글자의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


Q. 꼬딕씨 인기를 체감할 때는?

A. ‘꼬딕씨’는 한글씨 제작소에서 만든 폰트 중 하나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연속으로 3번 나타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대부분 분야에서 쓰이는 것 같다. 지난 2014년 처음 출시했을 때만 해도 출판 업계에서 주로 구매했다. ‘레트로 마니아’라고 ‘슬기와 민’이라는 유명한 디자이너가 작업했던 책인데 꼬딕씨가 표지에 쓰였다. 뿌듯했다. 어느 순간 출판계를 넘어 웹디자인, 애플리케이션 분야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광고업계에서도 꼬딕씨 폰트가 쓰인 영상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트렌드가 다양한 분야로 흘러가는 게 재밌었다.

Q. 꼬딕씨의 매력은?

A. 글자체가 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고딕체, 명조체 등 카테고리가 있다. 같은 고딕체라도 진지한 본문용 서체가 있는 한편 헤드라인용 서체도 있다. 요즘에는 네모 틀에 꽉 찬 형태의 고딕체가 많이 쓰인다. 5년 전만 해도 거의 없었는데 유행을 타는 시점보다 약간 앞서 꼬딕씨가 나온 거다. 선점효과 덕을 봤다. 그리고 꼬딕씨 서체가 특징이 없다(웃음). 무척 기본적인 형태라 호불호가 없는 것 같다. 꼬딕씨 폰트 굵기가 6가지로 나왔는데 이것도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굵기로 디자인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요소들이 풍부해져서 디자이너들이 사용하기 편했을 것이다.

‘타이포잔치 전시회’에 사용된 HG키큰꼬딕씨.


지난 2017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사용된 HG백야./JTBC 화면 캡처


Q. 직접 만든 폰트가 사용된 콘텐츠 중 기억에 남는 것은?

A. 평소에 좋아했던 ‘타이포잔치 전시회’에서 처음 들어가자마자 바닥에 ‘키큰꼬딕씨’를 이용해서 만든 작품이 있었는데 인상 깊었다. 또 ‘장기하와 얼굴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꼬딕씨로 가득 찬 포스터도 재밌었다. 2017년 백상예술대상 대표 서체로 ‘백야’ 폰트가 사용됐었다. 텔레비전을 보다 신기해서 녹화했다.

"폰트 제작은 엉덩이 싸움"


가수 ‘장기하와 얼굴들’ 공연 홍보 포스터./인스타그램 캡처


HG인문고딕에서 디자인 된 ‘뷁’ 추가자.


Q. 폰트 제작 과정?

A. 어떤 서체의 폰트를 만들겠다고 기획하면 딱 몇 글자만 만들어 본다. 생각하는 의도에 맞는 폰트를 만들어 문장을 써 보는 거다. 일단 10자 미만의 폰트들을 그려보면 이 폰트가 어떤 느낌으로 나올지 예상된다. 그 후 20글자, 30글자, 40글자로 부풀려 새로운 글자 조합으로 맞춰본다. 글자끼리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이 있으면 다듬으면서 완성도를 높인다. 그런 식으로 해서 폰트 한 벌을 작업한다.

Q. 폰트 한 벌은 어느 정도인가?



A. 키보드를 눌렀을 때 출력되는 글자를 다 그려줘야 폰트 한 벌이 된다. 한글 폰트는 기본적으로 2,350자를 만든다. 거기에다 디자이너에 따라 ‘추가자’라고 해서 ‘뷁’처럼 시대가 변하면서 새롭게 쓰이는 글자들을 더한다. 본인 필요에 따라 추가자로 200자를 그리는 분도 있고 300자를 그리는 분도 있다. 이론상으로 한글로 만들 수 있는 글자는 총 1만1,172자다. 널리 보급해야 할 폰트라면 1만1,172자를 개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2,350자에 추가자를 포함해 제작한다. 그래서 폰트 하나를 만들기 위해 2~3달에서 길게는 1~2년을 제작한다.

HG꼬딕씨가 사용된 영화 ‘비긴 어게인’ ‘아메리칸 셰프’ 포스터.


HG꼬딕씨가 사용된 2016년 국립극단 연극 ‘갈매기’ 옥외 홍보 포스터.


Q. 재미난 제작 에피소드가 있나?

A. 해외 영화 포스터를 보면서 ‘키큰꼬딕씨’ 기획을 떠올렸다. 영어로 된 영화 포스터를 보면 스태프 이름이 길쭉한 글씨로 다닥다닥 적혀 있다. 한글로 만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해서 만든 거다. 영문자는 구조상 극단적으로 글자 폭을 좁히는 게 쉽다. 하지만 한글은 길쭉한 글자로 만드는 게 복잡하다. 이 과제를 풀기 위해 ‘키큰꼬딕씨’를 제작했다.

Q. 영어 폰트와 한글 폰트의 디자인 차이는?

A. 영문은 죽 나열하는 글자인 반면 한글은 자소들을 조합한 글자다. 영문 폰트는 글자 수가 많지 않아 진입하기 쉽다. 하지만 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고 종류도 많다. 한글 폰트를 디자인하려면 한글을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한글을 계속 봐왔기 때문에 미세하게 글자체를 구분할 수 있는 눈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 태국어나 러시아어, 그리스어를 디자인한다고 생각해보자. 할 수는 있겠지만 오래 접한 글자가 아니라 새로운 틀을 디자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

HG키큰꼬딕씨(왼쪽)와 HG굴린꼬딕씨가 쓰인 ‘오롤리데이 전시회’(오른쪽)


Q. 폰트 이름은 어떻게 짓나?

A. 한글씨를 의인화한 것처럼 폰트도 의인화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 다르듯 폰트의 성격을 나타내는 형용사를 하나씩 붙여서 ‘키큰꼬딕씨’ ‘굴린꼬딕씨’라고 지었다. 이런 방식이 안 맞는 폰트는 작업 기간 내내 생각해서 이름을 짓는다. 좋은 폰트 이름은 글자체 느낌이 담기면서 사람들이 부르기 쉽고 그 폰트로 그 이름을 썼을 때 예뻐야 한다. 이 세 가지를 충족하는 이름을 찾기 힘들다.

Q.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A. 명조체는 진지한 서체인데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모던한 방향으로 변형돼왔다. 그러다 보니 옛날에 붓글씨에서 파생된 명조체 필력이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손맛을 더한 명조체 폰트를 연구하고 있다. 여태 만든 폰트 중에 명조체 분류의 폰트가 없어서 시도한 것이기도 하다.

폰트의 미래는


현재 김동관 디자이너가 작업 중인 HG명조(가제) 아이디어 스케치.


Q. 디지털 기술이 폰트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A. 환경이 바뀌면 폰트에서 필요로 하는 성격이 새로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휴대폰에 탑재되는 모바일용 폰트가 생기기도 하고 이 북(e-book)의 발달로 전자책에 적합한 폰트가 제작되기도 한다. 플랫폼 만드는 사람들이 무얼 내놓느냐 따라 시장은 변한다. 그래도 폰트 디자이너들이 하는 일 자체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시대를 잘 파악해서 그에 맞는 글자 형태를 찾아 나가는 건 예전부터 해왔던 거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다.

Q. 영상 콘텐츠와 폰트의 관계는?

A. 영상은 메시지를 좀 더 짧고 강하게 보여주는 매체다. 영상에 폰트가 쓰였을 때 눈에 확 들어와야 하기 때문에 폰트 디자인 측면에서 감정을 강하게 나타낼 수 있는 시각적인 임팩트가 중요하다. 또한 영상에는 책보다 좀 더 큰 폰트가 단문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다양한 표현이 들어간 폰트를 시도할 수 있는 여지도 많아진다.

HG꼬딕씨가 쓰인 악동뮤지션 ‘오랜 날 오랜 밤’ 뮤직비디오 캡처본.


HG꼬딕씨가 쓰인 ‘타면 된다, 쏘카’ 광고 캡처본.


Q. 유료 폰트를 제작하는 이유?

A. 폰트 라이선스는 유료로 판매하는 것이 내 원칙이다. 꼬딕씨 같은 경우 현재까지 상업 용도에 따라 3만8,500원에서 19만8,000원 가격선에서 판매된다. 유료 폰트가 어떤 사람한테는 비싸게 느껴질 수도 있고 다른 사람한테는 싸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찌 됐건 구매한 사람들에게 효과가 좋고 괜찮다는 느낌을 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 꼬딕씨가 그런 역할을 잘했기 때문에 잘됐다고 생각한다. ‘유료 폰트도 사서 써볼 만하다’,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돈값 하는 폰트를 만들어야 한다.

Q. 폰트 저작권은 어떻게 보호되는가?

A. 폰트도 저작권이 있다. ‘그걸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폰트 라이선스 정책은 회사마다 다르다. 한 달 또는 1년 단위로 사용료를 지불한 뒤 클라우드 서비스로 사용하는 방식이 있다. 폰트를 사용하려면 컴퓨터에 폰트 파일이 설치돼야 하는데 클라우드 서비스는 구매자가 인터넷을 통해 폰트 회사 서버에 있는 폰트 파일을 사용할 수 있도록 연결해준다. 폰트 파일을 직접 제공하지 않아 저작권을 지키기 쉽다. 하지만 한글씨는 다운로드 방식으로 판매한다. 폰트 가격을 지불하면 일련번호를 입력해야 사용 가능한 폰트 설치 파일을 다운 받아 사용할 수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구축할 자금이나 인력이 부족한 소규모 폰트 디자이너들은 대개 이런 방식으로 폰트 저작권을 보호한다.

HG꼬딕씨로 쓴 문장.


Q. 폰트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A. 모르고 뛰어든 분야인데 어쩌다 보니 잘 맞아서 하게 됐다. 세속적인 성공을 바라고 뛰어들 수 있는 분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꿈이 생겼으면 폰트 하나 정도는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작업을 해봤으면 좋겠다. 요즘에는 폰트 디자인을 가르쳐주는 학원 같은 곳도 생겼다. 옛날보다 진입장벽이 낮아진 만큼 겪어보고 나서 확실히 판단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폰트 디자인은 자신이 하는 만큼 결과물이 나오는 분야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시장과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폰트를 만들며 이 사이클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황민아 인턴기자 noma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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