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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거북선 만든 소나무의 왕, 태풍에 쓰러지다

[나무로 읽는 역사] 왕소나무를 위한 진혼곡

강판권 계명대 교수·사학

수호신 역할 600세 왕소나무

천연기념물 290호로 지정됐지만

2012년 태풍 볼라벤에 쓰러져

'붉은 몸' 위용 온데간데없고

기념사진 대상 전락에 충격·분노

희로애락 함께한 마을사람 삶 등

600년 담은 책 '진혼곡'으로 출간

지난 2012년 8월28일 태풍 볼라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 많은 600세의 왕소나무를 뿌리째 쓰러트렸다. 높이 12.5m, 둘레 4.7m의 왕소나무가 넘어지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천붕지해(天崩地解)의 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슬퍼서 한참 동안 통곡했다. 나는 2014년 4월1일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슬퍼서 통곡한 적 없었다. 나는 왕소나무가 쓰러졌을 때만 해도 통곡한 이유를 정확하게 몰랐다. 그저 눈물이 저절로 나왔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왕소나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문상도 가지 않았다. 소식을 들었을 당시만 해도 그냥 천연기념물 소나무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6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왕소나무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차를 몰고 왕소나무에게 문상하러 갔다. 왕소나무가 살아 있었다던 충북 괴산군 청전면 삼송리에 두려운 마음으로 도착해 직접 돌아가신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영상과 사진으로 보던 모습보다 처참해서 큰 충격을 받아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왕소나무의 죽은 모습은 살아 있을 때의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경건하게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태풍에 쓰러진 왕소나무.




나는 왕소나무가 살아 있던 기간에 열 차례 만났다. 내가 만나 본 왕소나무의 모습은 1982년 11월4일 천연기념물 290호로 지정된 후다. 왕소나무는 2014년 12월5일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될 때까지 32년 동안 우리나라 소나무 중에서 큰 어른으로 존경받았다. 나는 처음 왕소나무를 만났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워낙 왕소나무는 일반 소나무와 다른 독특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왕소나무는 몸 전체가 황토를 바른 것처럼 붉은색이었다. 흔히 우리나라 소나무의 줄기가 붉어 적송이라 부르지만 우리나라의 모든 소나무가 적송은 아니다. 왕소나무는 온몸이 붉은색이라서 나처럼 눈이 좋지 않은 사람도 멀리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찾는 사람이 왕소나무 앞에 서면 저절로 압도당하면서 경건한 자세로 우러러봐야 한다. 더욱이 왕소나무는 나무 밑동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갈래로 뻗은 아주 굵은 가지 덕분에 마치 부채를 펼친 것 같은 자태로 보는 사람들을 무척 즐겁게 한다. 그러나 왕소나무의 이 같은 자태는 볼라벤 같은 엄청난 태풍을 견디는 데는 큰 약점이었다. 직근성의 소나무는 뿌리를 곧장 내려서 강한 줄기를 만들어야만 쓰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왕소나무는 원줄기가 짧은 반면 두 가지가 줄기만큼 자란 탓에 엄청난 태풍을 견디는 데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왕소나무의 줄기와 가지는 600세의 연륜 때문에 마치 용을 닮았다. 그래서 왕소나무를 용송(龍松)이라 부른다.

왕소나무가 쓰러지자 천연기념물을 관리하는 문화재청을 비롯한 관련 기관에서 1여년 동안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소생시키는 방법을 찾았지만 끝내 왕소나무는 살아나지 못했다. 현재 왕소나무의 시신은 살던 곳 바로 옆에 비를 피할 수 있는 건물에 안치돼 있다. 나는 왕소나무를 문상하고 돌아오면서 이 나무를 어떻게 대우할까를 깊이 생각했다. 왜냐하면 도저히 왕소나무를 죽은 채로 보관하는 것만으로는 위대한 존재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왕소나무를 특별히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왕소나무에 대한 애정 때문만이 아니라 나무 천연기념물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우를 이 기회에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중에서 소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천연기념물 소나무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모든 소나무는 한반도를 지킨 수호신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소나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의 배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임진왜란 때 소나무로 만든 판옥선과 거북선으로 한반도를 지킨 일등공신이었다. 아울러 소나무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문헌자료까지 남아 있는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천연기념물 소나무는 이 같은 가치를 지닌 소나무를 대표한다.

태픙에 쓰러지기 전의 천연기념물 290호 왕소나무. 수명이 600년에 달하고 모습이 꼭 용 같다고 해 ‘용송(龍松)’으로도 불린다.




나는 왕소나무를 문상하고 돌아오면서 그를 위해 책을 쓰기로 다짐했다. 600년 동안 이 땅에서 살면서 가깝게는 삼송리 마을 사람들의 수호신이었을 뿐 아니라 멀리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왕소나무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의 문제가 우리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재청이나 관련 기관에서는 아직도 왕소나무와 같은 나무 천연기념물의 시신에 대해서는 관리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다. 나무 천연기념물의 시신에 대한 문화재청의 관리 수준은 죽은 왕소나무를 찾은 사람들이 시신에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올라가 웃으면서 사진을 찍은 장면이 버젓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것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왕소나무의 시신에 대해서조차 이같이 대우한다면 다른 나무는 어떻게 대우하는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나는 이 같은 왕소나무에 대한 문화재청과 일반 시민들의 대우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왕소나무가 죽은 후 진혼곡을 준비했지만 아직 책으로 출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왕소나무의 시신을 훼손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는데도 더 이상 집필을 미루는 것은 나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어 바로 집필에 착수했다. 책은 왕소나무가 600년 동안 살았던 궤적을 100년 단위로 역사적으로 살피는 내용이다. 핵심 중 하나는 왕소나무가 600년 동안 사는 데 희로애락을 함께한 삼송리 마을 사람들의 삶이다. 그분들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왕소나무는 결코 600년 동안 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판권 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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