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추천한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들이 총 사퇴 입장을 밝혔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 대비 2.87% 올라 ‘금융위기 수준의 인상률’을 기록한 데 대한 항의 의미다. 민주노총은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폐기나 다름없다며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날을 세워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 등을 거치며 노정관계는 더욱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노총은 최저임금위원 사퇴와는 선을 그었지만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에는 불편함을 숨기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15일 자신들 몫의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들이 일괄사퇴한다고 발표했다.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 9명 가운데 민주노총 추천 위원은 4명이며 나머지 5명은 한국노총 추천 위원들이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조직 내부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노총 소속의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이 모두 직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사퇴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총은 이날 “내년도 최저임금은 사측 안이 일방적으로 관철됐고 산입범위가 상여·복리후생비까지 확대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삭감”이라고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문재인정부 책임론’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정부 여당이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최저임금인상 속도 조절’ 입장이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들을 통해 그대로 관철된 결과”라고 말했다. 백석근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답정회’, 답을 정하고 하는 회의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며 “최저임금 결정에 대한 내용은 뒷전으로 하고 경제적인 부분을 묻는다든지 소상공인과 중소·영세사업자 이야기만 했다. 공익위원들이 처음부터 정부의 아바타 역할을 했던 듯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의 근로자위원 사퇴는 한국노총과는 별다른 교감 없이 이뤄졌다. 한국노총 고위관계자는 “노동자위원 사퇴 계획은 한국노총에서는 없다”며 “민주노총 측에서 최저임금위원회 마지막 전원회의 당시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다만 한국노총은 잇따른 파행에 따라 최근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대했다. 이 고위관계자는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되면 노사는 빠지고 정부의 영향력이 강해진다”며 “만약 결정구조가 개편되면 공익위원이 일괄 사퇴했듯이 (근로자위원도) 새롭게 구성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국회에서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가 추진되면 양대노총이 연대 투쟁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노동계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으로 터져 나온 반발을 ‘하투’ 전반으로 끌고 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주노총은 오는 18일로 예정하고 있는 4시간 이상 총파업에서도 최저임금 관련 문제를 강하게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15일 국회 앞에서 연 결의대회 명칭에도 최저임금 1만 원 폐기를 규탄하는 메시지가 추가로 들어갔을 정도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과 같은 장기 과제까지 가지 않더라도 ‘7월 국회’를 두고 노동계와 정부·국회의 관계 경색은 불가피해 보인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논의할 예정이다. 여기에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최저임금 차등화(규모·권역·지역) 압박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7월 국회에서 논의될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 여러 사안에 대해서도 8월 총파업까지 투쟁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백 사무총장은 이날 국회 앞 결의대회에서 “18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탄력 근로와 최저임금 개악을 한다고 하면 기필코 좌시하지 않고 국회를 해체하는 투쟁까지 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정관계 복원은 더 멀어지는 분위기다. 민주노총은 당초 예정됐던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의 면담 계획도 잡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결의대회에서 “최저임금 참사의 모든 책임은 문재인 정부에게 있다”며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 등을 들어 “저들이 개악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모든 힘을 기울여 노동탄압에 맞서는 투쟁을 삼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날 긴급 간부회의에서 민주노총의 총파업 계획과 관련해 “경제 여건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로 국민의 걱정이 크다”며 “우리 사회가 당면한 여러 가지 노동 현안에 대해 노사 모두 조금씩 양보하고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자제를 촉구했다.
/변재현기자 세종=박준호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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