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안보 분야도 사면초가 상태다. 국방비는 국방비대로 늘어나는데 안보 위협은 전방위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남북 대화와 한반도 평화를 중시하지만 북미 대화는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북한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방어 자산으로는 요격이 어려운 신형 탄도미사일을 쏴올렸다. 중국과 러시아는 연합 비행으로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 무단 진입을 일삼고 있다. 급기야 러시아는 영공을 침범하고서도 잡아뗐다.
‘전통적인 혈맹’인 미국과 ‘우방’으로 여겨온 일본도 미덥지 않다. 일본은 러시아 조기경보기의 영공 침입을 막으려 전력을 다하는 한국 전투기 편대의 등 뒤에 항공자위대 소속 전투기를 보내며 한국인들의 반발을 살 게 뻔한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한국을 방문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기 전에 야당 의원을 먼저 만나는 무례를 범했다. 한국군의 호르무즈 파병에 필요한 국회 동의를 위한 행보로 보이지만 정부 여당과 극한 대립하는 야당 지도자를 먼저 접촉했다는 사실은 내정 간섭 또는 한국 정부를 가볍게 여긴다는 해석이 가능한 사안이다. 혈맹으로부터 기본적인 예우조차 받지 못할 만큼 국방 외교도 낙제점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다.
아직 가상적인 북한은 물론 잠재적인 위협이던 중국·러시아의 위협이 가시화하고 일본은 경제와 정치·외교에 이어 안보 분야까지 사사건건 대립하며 미국은 한국을 우습게 여기는 상황에서도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 4%대로 떨어진 국방비 증가율을 해마다 7%까지 끌어올리고 방위력 개선비는 그 두 배 수준까지 증액시켰다. 그럼에도 동네북처럼 이리 채이고 저리 까이는 가장 큰 것은 발언권이 약해진 탓이다.
난국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안보 전력과 경제력을 갖추는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에는 두 가지 난제가 있다. 첫째,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경제력을 단시일에 끌어올리기는 불가능하다. 둘째, 하나같이 상대가 버겁다. 미국과 중국·러시아·일본이라는 세계 4대 강국의 틈바구니 속에 위치한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 거기에 현실적으로 분단 이후 최대의 안보 위협이었으며 국력 차이가 심해진 이후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북한의 위협 역시 상존한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안보 역량을 키우기에는 한계가 분명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처럼 다중 위협에 동시 노출된 적은 없다. 타개책은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위기는 곧 기회’라는 적극적 인식이 필요하다. 둘째, 한반도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한국이 만만하게 당하지 않는다는 ‘고슴도치 전략’ 수립에 역량을 모을 때다.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는 무기 체계 개발에 주력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한다면 국방비 집행의 효율성도 높아질 수 있다. 셋째, 한미 동맹의 틀 속에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상황에도 대처 가능한 전략 무기 개발에 미국의 존재가 간혹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마저 뛰어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과 미사일협정을 조금씩 개선했던 전례도 있다. 마침 미국이 한국에 해외 파병을 요청하는 시점이어서 선택 여하에 따라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고슴도치 전략을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는 핵 전력 개발, 원자력 추진 잠수함 확보, 장거리 투사 능력 전투기 증강, 초음속 대함 미사일, 극초음속 탄도미사일 확보 등이 손꼽힌다. 북한 핵을 저지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는 마당에 핵 전력 확보가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수 있지만 한반도 주변 4강 중에 일본만 빼고는 모두 핵보유국이다. 일본도 한국은 제약받는 고농도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어 언제든지 핵무기 제조가 가능하다. 북한은 핵 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받으며 북미협상을 진행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대놓고 개발할 수는 없어도 연구개발만큼은 생존권 차원에서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중국과 러시아가 지난주에 처음 실시한 연합 비행이 늘어날 경우 한국 공군은 간신히 대응할 수준의 전력만 갖고 있다. 중러의 도발에 최소한의 전력으로 대응하는데 보유 전투기와 조종사의 피로가 누적될 게 명약관화하다. F-15K급 전투기의 추가 도입이 시급하다. F-15 전투기가 초도 생산된 지 50년이 지난 고물이라는 혹평이 많지만 전 세계에서 실전 경험이 가장 풍부한 이스라엘은 F-35 스텔스전투기 도입을 줄이는 대신 F-15 시리즈의 최신 개발형인 F-15 2040 전투기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예산 사정이 빠듯하나 새로운 위협에 걸맞은 대응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군이 보유한 미사일의 창끝을 더욱 다듬는 것도 대안으로 꼽힌다. 북한이 새로 개발했다는 이스칸데르급 미사일을 이미 보유했다고 알려졌지만 수량도 많지 않고 사거리도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다. 중국과 러시아·인도·대만 등이 이미 선보이고 미국도 시작한 초음속 및 극초음속 대함 미사일만큼 효과적인 고슴도치형 무기도 없다. 방위사업청의 한 관계자는 이들 무기 체계에 대해 “밝힐 수는 없지만 이미 개념 연구를 넘어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간 무기 체계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준비는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 예비역 장군은 이에 대해 “쉬쉬하며 개발할 게 아니라 대외적으로 당당하게 밝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습성으로 굳어진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 대놓고 밝히는 게 국제 무대에서 발언권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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