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비리를 수사할 때 대단한 검사가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검사가 소박한 용기만 가져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지난달 검사장 인사를 앞두고 퇴임한 윤웅걸 전 전주지검장은 앞서 검찰 내부전산망 이프로스에 올린 ‘검찰개혁론2’라는 글에서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정치적 중립의 문제를 더 이상 검사 개개인의 양심과 용기에만 맡겨둘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대통령의 검사 인사권을 제한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지난달 31일 단행된 검찰 중간간부 인사 이후 이 같은 주장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적폐수사 공로가 있는 이른바 ‘윤석열 사단’이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환경부 블랙리스트’ 등 정권에 불리한 수사를 한 검사들은 좌천되면서 ‘편 가르기’ ‘길들이기’ 인사라는 비판과 함께 역대 최대 규모인 70여명의 줄사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5일 검찰청법 제34조 1항에 따르면 검사들에 대한 최종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검사의 임명과 보직에 대해 법무부 장관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에게 의견을 낼 수 있을 뿐이다. 통상 법무부 검찰국에서 인사안을 작성하면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 검찰총장이 상의해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 인사안 작성 경위와 결정 이유는 깜깜이다. 법무부에는 외부인사 등이 참여하는 검사인사위원회가 구성돼 있으나 인사에 관한 원칙·기준을 심의할 뿐 승진·전보 등 구체적 인사안은 심의 대상이 아니다. 정치권력이 검사 인사를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는 것을 견제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이다.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는 “검사 인사에 여당과 캠프 출신 등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인사제도는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인 현 정권은 건드리지 못하고 ‘죽은 권력’인 전 정권만 혹독하게 수사하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지난 2016년 11월 한 시국 토론회에서 “검찰의 기본 속성은 죽은 권력과는 싸우고 산 권력에는 복종하는 ‘하이에나’ 식이다”고 지적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고 밝혔으며 대선공약 및 100대 국정과제에서 ‘검찰인사위원회의 중립성·독립성 확보’를 약속했다. 2012년 대선 때 내놓은 검찰개혁안에서는 검찰인사위원회를 외부인사가 반수 이상 참여하는 형태로 확대 개편하겠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법무부는 검사 인사 관련 원칙·기준의 법제화 조치만 했을 뿐 인사위원회는 전혀 손대지 않았다. 최근 검찰 내 ‘인사 파동’ 이후 검찰 인사위원회에 외부인사를 늘려 독립성을 높이고 구체적인 인사안 심의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이는 프랑스 모델과 유사하다. 프랑스는 법무부 장관이 부장검사 이하 검사에 대해 인사권을 가지나 ‘최고사법평의회’로부터 인사안에 대한 권고를 받는다. 직급별 검사 대표와 상하원 의원 등으로 구성된 최고사법평의회는 검사의 인사 서류를 조사할 수 있고 인사 관련 논의사항을 연례보고서로 공개한다. 정치권력의 자의적인 인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수사에서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키도록 하려면 그들에 대한 인사가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결정되는 제도부터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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