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화 시장환율에 이어 중국 정부가 외환거래의 기준으로 삼는 중앙은행 고시환율마저 달러당 7위안 선을 넘어섰다. 중국 정부가 미국의 고율 관세와 화웨이 제재 압박에 맞서 ‘위안화의 무기화’를 본격화한 것으로 보여 당분간 위안화 환율 상승(가치 하락)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당분간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도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8일 인민은행은 기준환율을 전날의 달러당 6.9996위안보다 0.06% 올린 7.0039위안으로 고시했다. 지난 5일부터 역내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7위안을 돌파한 ‘포치(破七)’가 발생한 데 이어 중국 정부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최근 시장환율은 다소 안정되는 분위기였지만 6거래일 연속 올라 달러당 7위안 선까지 돌파한 기준환율이 앞으로 시장환율을 더 끌어올릴 가능성이 커졌다. 기준환율이 달러당 7위안을 넘은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5월 이후 11년 3개월 만에 처음이다.
중국 정부가 기준환율까지 ‘포치’로 만든 것은 미국의 무역전쟁 압박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인민은행이 이달 5일 시장환율 7위안 돌파를 용인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를 예고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후 환율을 진정시키며 기준환율을 7위안 아래에서 묶어뒀던 인민은행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데 이어 이날 새벽 ‘국방수권법’에 근거해 화웨이·하이크비전 등 중국 통신·감시장비 업체에 대한 구매금지령까지 발표하자 기준환율까지 7위안대로 끌어올렸다. 이는 자금 해외유출과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경기 불안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위안화 가치를 절하시켜 미국의 관세부과 영향을 상쇄시키고, 무엇보다 트럼프 정부를 향해 ‘버티겠다’는 의지를 표시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트럼프 정부의 이날 조치는 중국 5개 업체의 장비 구입에 연방재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으로 오는 13일부터 발효되며 향후 60일간 의견수렴을 거쳐 최종 규정으로 확정된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화웨이 등 중국 업체들의 장비에 대해 스파이 행위 등 국가안보 우려를 제기해왔다. 내년 8월부터는 관련 중국 업체들의 장비를 사용하는 기업들과의 계약에도 적용되는 보다 광범위한 금지 조치가 발효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 양국은 9월 미 워싱턴DC에서 재개되는 고위급 무역협상에서 돌파구를 찾을 예정이지만 미국이 환율조작국 지정에 이어 무역전쟁 핵심쟁점인 화웨이 문제에서도 강경한 태세를 보임에 따라 타결은 갈수록 요원해지는 분위기다. 미 CNBC 방송은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타격을 가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경기 둔화까지 감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인민은행이 기준환율을 7위안까지 허용함에 따라 무역전쟁 격화로 인한 위안화 가치 하락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다음 위안화 환율 마지노선은 트럼프 정부가 준비하는 3,000억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대한 10%의 추가 관세 영향을 거의 상쇄할 수 있는 환율 수준인 달러당 7.2~7.3위안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뱅크오브메릴린치는 이날 “미국이 예고대로 9월1일부터 중국산 3,000억달러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할 경우 위안화 환율은 달러당 7.3위안, 나아가 25% 관세를 부과하면 7.5위안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위안화 절하는 ‘양날의 칼’이다. 8일 중국 해관총서(관세청)는 미국 고율 관세의 직격탄으로 지난달 대미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7.8% 줄었지만 가격경쟁력이 전반적으로 올라 전체 수출은 3.3%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위안화 절하로 수출가격이 전반적으로 떨어진 데 따른 것인데 이는 미국은 물론이고 관세전쟁과는 무관한 주변국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환율전쟁을 전방위로 확산시킬 가능성이 크다.
한편 위안화 가치 하락으로 당분간 원·달러 환율도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위안화와 강하게 동조되는 원화의 특성상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이 높아질수록 원·달러 환율 역시 상승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은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자본유출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사실상 환율은 한국 경제의 신뢰도를 가늠하는 역할을 한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환율이 높아지면서 증시가 더욱 폭락했다. 이 점을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고위당국자들도 “외환시장 변동성이 생기면 조치를 하겠다”며 강력한 구두개입성 발언을 연일 내놓고 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박형윤기자 chs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