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갈등과 제조업 경기 둔화 등으로 세계 경제에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드리운 가운데 정부가 우리 경제에 대해 5개월째 ‘부진’ 진단을 내렸다. 정부가 매달 국내외 경기상황에 대한 공식 판단을 담는 그린북에서 5개월 연속 ‘실물지표 부진’ 평가를 내린 것은 2005년 보고서 발간이 시작된 이래 처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 국무회의에서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은 튼튼하다”고 언급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기획재정부는 16일 펴낸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8월호에서 “2·4분기 우리 경제는 생산이 완만하게 증가했지만 수출 및 투자의 부진한 흐름이 지속됐다”고 밝혔다. 기재부가 그린북에서 우리 경제의 실물지표에 대해 ‘부진’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올해 4월 이후 5개월째다.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을 두고는 “상존한다”에서 “확대”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미·중 무역갈등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사태 장기화의 여파로 주요국의 제조업경기 둔화가 본격화하고 있는데다 반도체 업황도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반영됐다. 지난달 중국의 산업생산 증가율은 17년만에 최저치로 떨어졌고 독일은 2·4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우리 수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최근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까지 더해져 우리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더 커지고 있다.
정부는 기술적 표현을 둘러싼 확대 해석에는 선을 그으면서도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위기감을 드러냈다. 홍민석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부진’이라는 표현이 신축적으로 사용된 만큼 (최초로 5개월 연속) 쓰였다는 것에 큰 의미는 없다”면서도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미국의 대(對)중국 관세 부과 등 여러 이벤트가 불확실성으로 크게 남아있는 것은 경제활동에 절대 좋은 것은 아니다. 세계에 경제 불안감이 팽배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우리 경제의 실물 지표는 부진을 벗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올해 2·4분기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7.8% 감소했고 선행지표인 국내기계수주와 기계류 수입도 감소했다. 수출은 지난해 12월 이후 8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고 미래와 현재 경기 흐름을 보여주는 동행·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 6월에도 하락세를 이어갔다.
6월 산업활동 주요 지표는 광공업 생산과 설비투자가 소폭 증가했으나 서비스업 생산과 소비, 건설투자는 감소했다.
5월과 6월을 전월 대비로 보면 광공업(-1.3→0.2%)은 증가 전환했지만 서비스업(0.3→-1.0%)이 감소로 전환해 6월 전(全) 산업생산은 0.7% 감소했다. 소매판매(0.9→-1.6%)는 감소로 돌아섰으며 설비투자(-7.1→0.4%)는 소폭 증가했고 건설투자(-0.9→-0.4%)는 소폭 감소했다. 7월 수출은 반도체 업황 부진이 지속하는 가운데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 등의 영향으로 1년 전보다 11.0% 줄면서 2018년 12월부터 8개월 연속 감소했다./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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