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위원장 "모럴해저드 무서워 채무조정 안하면 사회비용 늘어 악순환"

[서경이 만난 사람]

채무는 질병과 같아…채무조정으로 '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신용유의자, 기초수급자 전락땐 천문학 복지예산 필요 불가피

전국 센터 돌며 현장 지원 강화…52만 불법사채 이용자 흡수 노력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장 겸 신용회복위원장/성형주기자




“국가가 나서 개인의 빚을 탕감해주면 멀쩡하게 잘 갚던 사람들도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보일 수 있다는 걱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채무조정제도는 조선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본인이 갚지 못할 정도로 빚이 늘어난 서민들은 국가가 구제해 재기를 돕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이라는 게 예나 지금이나 통용되는 정책이라는 겁니다.”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장 겸 신용회복위원장은 2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개인 채무조정에 따른 모럴해저드 우려에 대해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까지 소개하며 불가피론을 강조했다. /대담=김홍길 금융부장 what@sedaily.com

서민금융진흥원과 신용회복위는 서민들의 어려운 생계자금을 대출해주거나 상환할 수준을 넘은 채무에 대해 조정해주는 역할을 하는 국내 유일한 곳이다. 이 원장은 “은닉재산을 형성한 뒤 (채무조정) 제도를 악용하는 경우가 왜 없겠느냐. 그러나 그런 사례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며 “일부의 모럴해저드 가능성을 두려워해 조금만 채무조정을 해주면 경제적 재기가 가능한 서민들까지 외면하는 일은 사회적 비용만 늘리는 최악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신복위를 통해 채무조정을 받는 이들의 평균 채무액은 3,000만원 안팎이라고 한다. 이들이 추심회사로부터 받는 독촉전화 등의 개인적 고통은 물론 통장압류 등 금융거래 차단으로 기초수급대상자로 전락해버리면 사회적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그 전에 채무조정을 통해 막아야 한다는 것이 이 원장의 지론이다.

그는 “채무를 지는 것은 질병과 똑같다”며 “병원에 빨리 갈수록 회복 가능성이 높아지듯이 연체가 시작되면 가능한 빨리 신복위의 문을 두드려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복위를 방문한 사람들은 연체가 시작된 후 평균 41개월이나 지나서야 오기 때문에 연체이자가 그만큼 늘어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태다. 이 원장은 “연체가 됐다고 자포자기를 하게 되면 오히려 병(채무 증가)을 키울 수 있다”며 “불법 사채를 이용하다 보면 오히려 더 악화돼 하루아침에 기초수급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그는 “신용유의자(신용불량자를 순화해 부르는 말)가 한번 삐걱해 기초수급자로 전락하게 되면 여기서 탈출하는 비중이 고작 5%에 불과해 이후에는 막대한 복지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악순환이 된다”고 강조했다.

기획재정부 시절 재정을 담당해본 이 원장은 누구보다 신용유의자의 기초수급자 전락이 천문학적인 재정투입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원장은 취임과 동시에 전국을 돌며 서민금융진흥원과 신용회복위의 역할을 ‘홍보’하는 데 땀을 흘렸다. 취임 1년도 안 돼 전국에 산재해 있는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47곳 가운데 절반인 23곳을 찾아 현장에서 직접 상담도 했다. 처음에는 새로 취임한 원장이 보여주기식으로 이벤트를 가지려는 게 아니냐며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지만 이 원장의 진솔한 마음에 상담 도중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 원장은 창원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다 고리 사채를 쓰는 바람에 불어난 원리금을 갚을 길이 없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서울 신복위를 찾아온 어느 사장님과 상담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고금리 사채를 쓰다 해결할 방법을 몰라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막막한 사정을 호소한 국밥집 사장님이었는데, 창원 인근에 지원센터가 있음에도 어렵게 서울까지 와 상담을 한 것을 보고 ‘전국을 누비며 앞으로 더욱 지원센터를 홍보하고 다녀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며 “서민금융지원제도를 몰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제때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데 대해 뼈저리게 반성했다”고 말했다. 당시 이 원장은 국밥집 사장의 하소연을 한 시간 넘게 조용히 들어만 줬다는데 그런 이 원장 앞에서 갑자기 국밥집 사장이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고리 사채를 쓰고 신용유의자가 됐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살았는데 이 원장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데 대해 감동한 것이다.

이 원장이 전국 곳곳으로 지원센터를 ‘홍보’하며 다니자 지역 정치인과 공무원·주민들도 자신들의 지역에 센터를 유치해달라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신용유의자들이 멀리까지 가지 않고 가까이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역 취약계층에게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진흥원은 지역별 맞춤형 지원을 위한 서민금융 지역협의체를 구성했다. 협의체는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중심으로 지자체·신협·지역자활센터 등과 연계하는 구조다. 서민들이 한 곳의 기관만 방문해도 필요한 서민금융 종합서비스를 안내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원장은 “현재 지역협의체만 30곳이 넘는다”며 “과거에는 서민금융지원체계가 지방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지역협의체의 성과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각지에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고 뿌듯해했다. 기재부 대변인을 지내기도 한 이 원장은 “화재가 발생하면 바로 119를 떠올리듯 서민들이 재무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바로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와 1397 통합콜센터를 떠올릴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이라며 특유의 입담으로 서민금융 ‘홍보맨’을 자처했다.



이 원장은 서민금융제도에 정부 예산이 더 과감하게 투입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신용등급 8등급 이하 263만명 중 연체가 있는 190만여명은 대부업이나 저축은행에서도 기피하는 대상이어서 급전이 필요할 때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실제 불법 사채시장 이용자 및 규모는 52만명, 6조8,000억원에 달한다. 그는 “빚에 허덕이는 이들이 서민금융 지원을 통해 기초수급자가 되는 것만 막아도 국가적으로 예산을 절감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면서 “복지 예산에 들어갈 1조원을 진흥원에 대신 투입하기만 해도 레버리지 효과를 통해 6조~10조원을 지원할 수 있어 보다 효율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나아가 서민금융 지역협의체 구성, 비대면 서비스 도입 등 서민금융 지원 및 상담 시스템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이 원장은 현장과 수요자 중심의 서민금융을 강화하기 위해 전화 고객상담 방식을 ARS가 아닌 직접연결 방식으로 바꿨다. 그는 “과거에 서민금융콜센터를 ARS 방식으로 운영했는데 직접 전화를 걸어보니 바로 연결이 안 돼 답답함이 컸다”면서 “올해 초 모든 고객과 상담사를 바로 연결하는 시스템으로 콜센터를 개편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올 상반기 콜센터에서 상담받은 사람은 약 29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58% 증가했다. 그는 예산을 확보해 차질 없이 체계를 구축할 수만 있다면 음지에서 신음하는 취약계층이 다시 사회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자신했다.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방문자 수도 급증했다. 올 상반기 방문자는 전년 동기 대비 24.1% 늘어난 20만7,000명에 달했다.

지원체계뿐만 아니라 서민금융 상품도 맞춤형으로 진화했다. 진흥원의 맞춤대출은 개인의 재무상황에 따라 적합한 대출상품을 한번에 지원해주는 제도다. 신용등급이나 부채 등 신청인의 상황에 따라 가장 적합한 대출상품을 안내받아 신청까지 할 수 있으며 추가 우대금리도 받을 수 있다. 특히 맞춤대출을 이용하면 신용조회기록은 남지만 신용평점에는 반영되지 않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진흥원은 올 상반기에만 2,163억원을 중개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79% 늘어난 것이다. 진흥원은 맞춤대출·미소금융·휴면예금·채무조정 등과 관련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서민·취약계층의 비대면 접근성을 개선할 계획이다. 젊은 신용유의자들은 노출을 꺼리고 비대면 지원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인공지능(AI) 기반 챗봇을 활용한 24시간 상담 시스템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이 원장은 “정책서민금융에 디지털을 접목하면 고객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민·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리=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He is...

△1960년 경기 가평 △1979년 가평 조종고 졸업 △1984년 동국대 산업공학과 △1990년 행정고시 합격(34회) △1994년 서울대 정책학 석사 △1995년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 사무관 △2011년 기획재정부 기획재정담당관 △2013년 주미대사관 공사참사관 △2017년 기획재정부 대변인 △2018년~ 서민금융진흥원장 겸 신용회복위원장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