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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색동옷 갈아입은 천년고찰…가을이 내려앉다

■전남 구례 사성암
가파른 비탈에 자리잡은 암자
1,500년의 시간 새롭게 단장
원효가 손톱으로 그린 약사여래
네명의 고승 흔적, 곳곳에 숨셔
문수보살 머문다는 노고단엔
장쾌한 운해가 한가득 펼쳐져

[休]색동옷 갈아입은 천년고찰…가을이 내려앉다
절벽에 붙은 채로 사바세계를 내려다 보고 있는 사성암. ‘원효·도선·진각·의상국사 네 명이 머무른 암자’라는 뜻에서 사성암이라고 불린다.

주차장에서 사성암까지 가파른 비탈을 오르니 사진에서 보던 빛바랜 암자 대신 산뜻한 단청을 입은 불당이 절벽에 붙어 있다. 생경한 모습에 ‘내가 잘못 왔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입간판 앞에 서서 안내문을 읽어보니 사성암이 맞긴 맞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임세웅 구례군 해설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최근 보수공사로 단청을 칠해서 새 절처럼 보인다”며 “보수공사를 마치고 지난 부처님오신날에 개방하면서 계단도 새 것처럼 꾸며 놓았다”고 말했다.

‘도저히 1,500년 된 암자라고 볼 수는 없다’는 의구심이 든 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 순전히 단청에 칠을 하고 곱게 새로 단장한 사성암 탓이다.

사성암의 불전은 유리광전(琉璃光殿)이라고 하는데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으로 불상은 왼손에 약병이나 약합·약단지(무가주)를 들고 있다. 하지만 암자 안에 들어가 보면 불상 대신 약사여래가 절벽에 그려져 있다. 임 해설사는 “절벽의 약사여래는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그렸다는 전설이 전해온다”며 “하지만 학자들은 9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 시기는 도선국사가 사성암에 머문 때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사성암이 있는 뒷산은 오산이라고 불리는 산으로 정상으로 가다 보면 평평한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들의 모습이 금강산을 닮았다고 해서 소금강이라고도 불린다. “오산의 바위와 절벽에는 금강산의 명소인 풍월대·망풍대·신선대와 같은 이름이 붙어 있는데 어디가 풍월대고 망풍대인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게 임 해설사의 전언이다.

1984년 2월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33호로 지정된 구례군 사성암은 원효(元曉)·도선국사(道詵國師)·진각(眞覺)·의상(義湘) 등 네 명의 고승이 수도한 곳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들이 지은 작은 암자인 사성암을 내려와 이번에는 대자연이 빚어낸 노고단으로 향했다.

[休]색동옷 갈아입은 천년고찰…가을이 내려앉다
새벽에 오른 노고단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의 운무에 덮여 있었다.

노고단 아래 성삼재는 1988년 관광도로로 포장되기 전까지 비포장도로여서 접근이 쉽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성삼재를 가려면 화엄사 뒤쪽으로 오르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성삼재까지 도로가 포장되면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화엄사 쪽은 상대적으로 한산해졌다. 성삼재 비포장도로는 해방 전 선교사들이 별장을 지으면서 베어낸 나무를 일제가 수탈해가는 통로로 사용했고 여순사건 이후에는 군사도로로, 그다음에는 관광도로로 활용되고 있다.

울창한 나무들이 뒤덮었던 노고단은 일본강점기 때 나무가 벌목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1967년 구례군민들을 중심으로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 운동’이 일어났고 1987년께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복원에 나서면서 원래의 모습을 조금씩 되찾고 있다.

임 해설사는 “지리산의 1,200m 이상 지역은 아고산지대여서 한번 사라진 나무는 복원이 어렵다”며 “봄철이면 노고단고개 위로 진달래가 만개하는데 도로를 따라 군락을 이루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진달래가 뒤덮는 봄철과 달리 노고단의 가을은 큰 나무가 없어서 단풍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노고단의 가을을 마다할 이유도 없다. 가을에는 일교차가 심해 장쾌한 운해가 펼쳐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고단은 해발고도 1,507m로 천왕봉(1,915m)·반야봉(1,734m)과 함께 지리산 3봉의 하나로 꼽히는 백두대간의 한 구간이다. 노고단이란 도교에서 나온 말로 ‘할미단’이라는 뜻이며 민속신앙에서는 늙은 시어머니를 문수보살로 여겨 지리산은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산으로 여기고 있다. 종교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를 뿐 노고단은 여자 산신이 머무는 산인 셈이다.

기자는 이날 새벽 5시께 성삼재에 도착해 노고단으로 향했다. 성삼재에서는 하늘은 안보였지만 시계는 확보됐는데 노고단이 가까워져 올수록 운무가 짙어져 일출은커녕 10m 앞의 이정표도 보이지 않았다.

[休]색동옷 갈아입은 천년고찰…가을이 내려앉다
천은사의 수홍루. 독특한 이층 누각으로 남쪽의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다.

노고단의 장쾌한 풍경을 보려던 욕심을 접고 내려오던 길에 ‘꿩 대신 닭’이라고 성삼재 아래에 있는 천은사에 들렀다. 화엄사와 비교해 규모가 작고 소박한 이 절은 뒤쪽 숲길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최근 방영된 TV미니시리즈 ‘미스터션샤인’이 이층 누각인 수홍루 앞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1984년 2월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된 절로 대형 사찰인 화엄사에 견줘 고적한 운치가 풍기는 절이다.
/글·사진(구례)=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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