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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쩐의 도피' 골드러시, 글로벌 경기침체 전조인가

■불안의 벽 타고 오르는 금값

무역·환율전쟁, 중동긴장 엎친데

日화이트리스트 배제까지 덮쳐

국제시세 17% 뛸때 국내 24%↑

각국 중앙銀도 앞다퉈 비축량 확대

'슈퍼랠리' 시작 2007년 연상 분석

금 싹쓸이 中, '태풍의 눈' 부상 불구

달러패권 美, 주도권 넘긴적 없어

무역전쟁 양상·돈풀기 속도가 관건

지구촌에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글로벌 자금이 안전한 도피처인 금으로 옮겨가고 있다. 국제 금값은 올 들어 17% 올랐고 국내 금값은 환율 상승과 한일 경제전쟁까지 겹쳐 24% 상승했다. /연합뉴스






경제 위기 10년 주기 설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는 가운데 최근 급등하는 금값이 주목을 받고 있다. 골드러시는 세계 경제 흐름에 불안을 느낀 투자자들이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 투자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국제 금값이 본격적으로 뛴 시기는 올 5월부터다. 금값은 지난 6월21일 온스당 1,400달러를 돌파했다. 미국의 금리 인하가 가시권에 들어오고 이란의 미국 정찰기 격추로 호르무즈 해협의 전운이 감돌던 시기였다. 금값은 이로부터 단 47일 만에 온스당 1,500달러 고지에 올라섰다. 2013년 9월 이후 5년 11개월 만에 최고치다. 1년여를 끌어온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휴전을 끝내고 재차 확전 태세로 돌아선데다 미국 경제가 고점을 찍고 하방압력이 커진다는 경고음이 울리면서 골드러시에 탄력이 붙었다. 국제 금값은 불안의 벽을 타고 올 들어 17% 상승했다.

국내 금값은 국제 시세보다 좀 더 빨리 움직였다. 올 들어 5월까지 국제 금값 상승률은 채 1%도 되지 않지만 국내에서는 7% 넘게 상승했다. 원인은 환율 상승이었다. 원화 가치가 하락하는 바람에 국내 가격이 뜀박질했던 것이다. 국내 금 가격은 국제 시세에다 환율과 국내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 국제 금값이 기세 좋게 오르던 8월 국내 금 시장에서 각종 신기록이 쏟아졌다. 지난달 2일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한 지난달 2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관련 부처 장차관들이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서울경제 DB


한국거래소가 운영하는 KRX 금 시장의 8월 중 하루 평균 거래량은 163㎏으로 7월 32㎏의 8배에 달했다. 지난해 하루 평균 거래 규모가 19.6㎏이던 것을 고려하면 가히 폭발적인 증가라고 할 만하다. 지난달 16일 하루에만 개인의 순매수 규모가 189㎏에 달하기도 했다. 김상국 KRX 금 시장 팀장은 “지난달 거래량이 급증한 것은 전적으로 개인 투자자의 매수세였다”며 “과거 자산가의 전유물이던 금 매입이 일반 투자자로 확산하는 증표”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개인의 금 순매수 행진은 7월19일부터 41거래일 연속 이어지고 있다. 이 역시 2014년 KRX 금 시장 개설 이후 최장 기록이다. 현물 거래도 폭증하기는 마찬가지다. 시중은행의 골드 바 판매는 올 들어 지난해 대비 두 배 정도 늘었다. 김은정 신한은행 PB는 “연세가 지긋한 은퇴 계층이 주로 골드 바를 찾는다”며 “최근 워낙 가격이 많이 올라 부담스러워 하지만 대기 수요는 상당한 편”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골드 랠리의 진원지는 미국이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시작한 후 글로벌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금 수요를 자극했다. 여기에다 세계의 화약고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이 겹쳤다. 또 다른 요인은 글로벌 돈 풀기 경쟁. 미국이 지난달 통화 팽창에 나서자 호주와 인도 등이 기다렸다는 듯 금리 인하 행진에 가세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리스크까지 겹친 유럽중앙은행(ECB)은 양적 완화까지 재가동할 태세다. 미국은 18일(현지시간) 추가로 금리를 내렸다. 바야흐로 미국발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옮아가는 추세다. 앞으로도 금 가격이 상승세를 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는 연유다. 골드만삭스는 6개월 이내에 1,600달러를, 씨티은행은 2년 내 2,000달러를 각각 예측했다. 국내 애널리스트들은 “아직 고점을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올 6월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양국 정상./로이터연합뉴스


금은 경제 상황이 불안해지면 수요가 늘어나는 안전 투자처로 꼽힌다. 하지만 금은 같은 안전 자산인 달러나 채권과는 조금 다르게 움직인다. 현물 자산인 금은 가격 변동성이 대체로 크다. 금값은 2011년 역사적 고점을 찍고 2018년까지 7년 동안 등락을 거듭했다. 2015년에는 온스당 1,000달러선이 붕괴될 뻔하기도 했다. 세계 경제가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 상황을 구가하던 시기였다. 안전 자산은 기본적으로 투자 리스크가 거의 없는 자산을 말한다. 여기서 위험은 투자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채무 불이행 외에 가격 하락도 포함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금은 달러나 달러 등가물인 미 국채와 달리 온전한 안전자산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다만 현금자산이 지니지 못한 강점이 있다. 인플레이션 헤지 기능이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금이 보관된 뉴욕 연준의 지하 금고 입구. 연준에 따르면 이곳에는 6,190톤의 금이 보관돼 있다. /뉴욕연준 홈페이지 캡처




금은 달러와 상극이다. 금값의 변동은 1971년 ‘닉슨 쇼크’로 알려진 미국의 금본위제 일방 폐기가 출발점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금값은 달러가치가 떨어질수록 올랐다. 다시 말해 기축통화의 지위가 흔들릴수록 금값이 상승했다는 의미다. 미국은 달러패권을 지키기 위해 국제 금값 통제에 나선 적도 있다. 미국은 1973~1980년 사이 재무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무려 1,700톤의 금을 투매했다. 현 시세라면 900억달러에 해당한다. 음모론자들이 종종 세계 최대 금 보관소인 뉴욕 연방준비은행 지하 금고가 텅텅 비었다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금본위제 폐기 원죄에다 이때의 금 덤핑 전력이 깔려 있다.

뉴욕 연준 지하금고에는 12.5㎏짜리 금괴 49만여개가 쌓여 있다. 금괴의 대부분은 2차 대전 전후 유럽의 전란을 피해 대서양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뉴욕 연준 홈페이지 캡처


각국 중앙은행이 국제시장에서 금을 싹쓸이하는 현상은 의미심장하다. 세계금위원회(WGC)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 규모는 전년 대비 60% 늘어난 374톤에 달했다.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 최대치다. 주역은 중국과 러시아. 각각 74톤과 94톤을 사들였다. 중국의 행보는 국제 금 시장에서 태풍의 눈이다. 세계 1위 외환 보유국인 중국은 무역전쟁 장기화에 대비해 금 매입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외환보유액 대비 금 비중이 3% 안팎으로 매우 낮아 만약 미 국채를 금으로 갈아탄다면 미국으로서는 큰 타격이다.



시장에서는 최근 금값 상승이 슈퍼 랠리의 출발점이 된 2007년을 연상시킨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값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표면화한 2007년 온스당 700달러를 돌파한 뒤 1,900달러를 넘어선 2011년까지 초강세를 보였다. 김상국 팀장은 “개인들의 금 투자 열풍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금값 폭등을 경험한 학습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금값 랠리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키는 미국이 쥐고 있다. 세계 경제를 견인하는 미 경제의 진로와 무역전쟁의 전개 양상, 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 등이 관건이다. 세계 경제 대통령인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과 백악관의 주인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키맨이다. 지난달 15일로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48년 주년을 맞았다. 미국이 금값을 좌지우지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린 백(달러의 별칭)’이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으니까. 역사적으로 금은 패권의 상징이었다./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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