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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누가 세대 갈등에 불을 지폈나

정민정 성장기업부장

'조국 사태' 세대갈등으로 점화

IMF 감원 칼바람도 피한 386

승승장구하며 권력 독차지

다른 세대 오랜 불만 폭발한 셈

정민정 성장기업부장




8월9일 법무부 장관 지명 후 50여일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조국 사태’는 진보-보수 진영 간 헤게모니 싸움을 넘어 세대 갈등으로 옮겨붙는 양상이다. “2030은 상실감과 분노를, 4050은 상대적 박탈감을, 6070은 진보진영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고 있다”고 진단했던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발언을 한 달 만에 소환해보면 정치 9단의 남다른 ‘촉’에 탄복하게 된다.

세대 갈등으로 확전한 배경에는 386에 대한 오랜 불만과 소외감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여름 ‘386세대에게 헬조선의 미필적 고의를 묻다’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386 세대유감’의 저자들은 1960년대 태어나 1980년대 대학을 다니며 30대부터 사회에 진출한 이들을 두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386·486·586이라 부르고 있지만, 30대에 쥔 권력을 50대에 이른 지금까지 쥐고 있다는 점에서 386이라는 명칭이 어울린다”고 규정한다.

앞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386세대에 오점을 남기며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진보 진영의 정치적 연대가 이번처럼 강력하지는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국 정국에서 청와대와 여당은 전면전까지 불사하며 강철대오를 구축했지만 조기에 진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의혹은 눈덩이처럼 몸집을 불리며 여기까지 왔다.



‘조국 사태’가 세대 갈등에 불을 지핀 이유 중 하나는 386(그중에서도 386 엘리트집단)을 제외한 나머지 세대가 절망을 느꼈던 상실감의 여러 층위(논문저자 등재 등 입학특혜 논란, 사모펀드 투자 의혹 등)를 날 것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하면서도 진보 진영의 목소리를 대표했던 ‘강남 좌파’ 출신에다 서울대 교수, 청와대 민정수석을 거쳐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면서 부산경남(PK) 출신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된 조 장관이 다른 386에 비해 두드러진 ‘성취(?)’를 이루기도 했지만 386이 다른 세대에 비해 좀 더 수월하게, 또한 압도적으로 권력의 중심부에 진입했으며 아직까지도 권력을 독식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갈등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실제로 386이 광복 이후 가장 많이 누린 세대라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본고사 폐지로 이전 세대보다 대학 진입이 수월했던 386세대 상당수가 학생 운동에 투신했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사회에 본격 진출했다. 이들은 국제통화기금(IMF) 직격탄을 맞아 사회진입이 원천 봉쇄됐던 지금의 40대(1970년대생)나 헬조선을 외치는 2030 청년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쉽게 취업했다. 3저(달러·유가·금리) 호황을 타고 회사를 골라서 갔고 노태우 정부가 1988년 발표한 주택 200만호 건설(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여기에다 국가적 재앙이었던 IMF 사태는 이들에겐 호재가 됐다. 대우·한보 등 재계 공룡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살아남은 기업들도 구조조정의 태풍에서 벗어날 수 없었지만,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386 사회 초년병’들은 감원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다. 오히려 구조조정의 타깃이 된 1950년대생의 빈자리를 메우며 조직 내 영향력을 한층 빨리 강화할 수 있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경험이 이들을 날줄처럼 엮으면서 유달리 강력한 연대의식과 인적 네트워크로 작동하는 것도 다른 세대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386은 자신들의 경험을 무용담처럼 들려주며 “너희가 87년 항쟁을 아느냐”고 묻곤 하는데 행간에는 “우리(386)니까 가능했다”는 우쭐한 자부심이 깔린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지금의 20대와 30대, 혹은 40대가 같은 시대적 상황에 놓였다면 386과 달리 비겁하기만 했을까. 혹은 386이 만들어낸 역사의 진전을 제대로 일궈내지 못했을까.

아직도 영화 ‘1987’을 보지 못한다는 87학번 선배는 동년배가 1987년을 기억하는 방식이 불편해서라고 했다. 상당수 386들이 1987년을 쓰레기통에 처박거나 액자에 넣어두고 훈장처럼 자랑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영화 ‘1987’은 ‘모두가 뜨거웠던 그 해’라고 홍보하지만, 선배의 기억 속 그 시절에도 대학가 디스코텍은 붐볐고 1987년 봄과 여름에도 도서관에 있는 학생이 시위에 참여한 학생보다 많았다. 그는 ‘반드시 모두가 뜨거워야 했느냐’는 의문도 생긴다고 했다. 동의한다. 동시에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그 시기에 찾아왔던 시대적 사명을, ‘386이었기에 가능했다’는 우월감으로 치환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쩌면 조국 사태의 본질도 ‘386이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이 빚어낸 참극일 수 있어서다.
/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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