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정부가 해외원조를 잇따라 거부하고 있다.
카를로스 도밍게스 필리핀 재무장관은 25일(현지시간) 프랑스와 독일에서 6,900만달러(약 827억원)의 차관을 들여오기 위한 협상이 중단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유엔이 필리핀의 ‘마약과의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조사를 압박하는 과정에서 두 나라가 후원국으로 참여하기로 한 뒤 나온 결정이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올해 7월 지난 3년간 필리핀 정부의 마약퇴치운동으로 사망한 수천명을 조사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뿐이 아니다. 두테르테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유럽연합(EU)으로부터 받을 예정이던 총 6,700만달러의 통상원조도 거부했다. 해외로부터의 대형 무기구매 계획도 속속 취소되고 있다. 2016년에는 미 상원의원이 마약과의 전쟁에 악용될 수 있다며 무기 판매를 차단하려 하자 필리핀 정부가 2만6,000개의 화기 구매계획을 취소해버렸다. 지난해에는 캐나다 정부로부터 헬리콥터 16기를 사들이는 2억3,500만달러짜리 계약도 깨졌다.
두테르테 정부가 해외원조를 거부하는 것은 무자비한 마약퇴치 정책을 비판하는 해외 정부의 간섭과 살상에 대한 국내 비판여론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서방국들은 두테르테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어린이를 포함한 무고한 시민들이 사망하고 정치범들까지 탄압받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가 원조 및 무기거래를 끊는 대상은 이러한 주장을 펴는 국가들이다.
살바도르 파넬로 대통령실 대변인은 외국이 필리핀 마약과의 전쟁에 개입하고 있다면서 “대통령은 해외차관 규모에 따라 국가의 존엄성을 양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싱가포르 ISEAS유솝이스학 연구소의 맬컴 쿡은 “두테르테의 해외원조 거절은 마약전쟁 반대에 대한 과민반응”이라면서 “많은 포퓰리즘 리더들이 해외 정부의 비판에 직면했을 때 이러한 통치방식을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필리핀 국방부조차 해외 무기 구매가 군사 현대화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해 원조 거부는 두테르테 정부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