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풀루오린 폴리이미드 수출을 허가하면서 수출 규제 목록에 오른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 모두가 소량이지만 국내에 들어오게 된다. 이번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을 앞두고 일본의 수출 규제가 자유무역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한일 양국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경제와 민간 교류에까지 피해가 누적되자 일본이 수위조절에 나섰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시행한 이후 처음으로 불화 폴리이미드 한국 수출을 허가하면서 수출 허가 건수는 총 5건으로 늘었다. 일본은 특히 한국이 WTO 제소를 위해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한 지난달과 이달들어 수출 허가를 집중적으로 내줬다.
일본은 이번 수출 허가 사례 등을 인용해 WTO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관련 수출 규제를 시행하면서 수출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라 관리 절차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에 맞서 통상당국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사실상 금수 조치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할 계획이었다. 이 경우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실제 허가 건수가 없는 품목이 있다면 우리 측 주장이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 일본은 이를 의식해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수출을 허용함으로써 명목상 3개 품목에 대한 수출을 지속하고 있다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수출 규제 품목 2종에 대한 허가를 내준 데 이어 이달에도 추가 허가를 내준 것은 추가적인 갈등을 피해야 한다는 판단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지난달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조치를 취한 이후 이렇다 할 경제 보복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최근 아베 신조 정권의 핵심 인물들이 잇달아 한국에 유화적인 목소리를 내놓고 있는 점도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한다. ‘자민당 2인자’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은 27일 “원만한 외교를 위해 한국도 노력할 필요가 있지만 우선 일본이 손을 내밀어 양보할 수 있는 것은 양보해야 한다”며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모종의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나카이 간사장은 7월 말 수출 규제 유예를 요구하러 일본을 방문한 한국 국회의원단 면담을 거부하는 등 아베 정권의 강경 기조에 보조를 맞춰온 인물이다. 같은 날 아카바 국토교통상도 ‘한일축제한마당 2019 인 도쿄’에서 한국을 “일본에 문화를 전해 준 은인의 나라”라고 소개하며 “일본 정치가들도 양국 우호 관계를 위해 대화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일본의 기류가 사뭇 달라진 데는 자국 내 경제적 피해가 누적되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에서는 한국 수출 기업을 중심으로 우려와 불만이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한국 기업들이 수출 규제에 맞서 국산화에 나서거나 대체 수입처를 찾으면서 일본 기업의 조급함은 한층 더해갔다. 실제 일본의 수출규제가 본격화하면서 한국으로 지난달 수출된 불화수소 물량은 전달보다 80% 넘게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아울러 일제 불매운동과 일본 여행 기피로 다른 분야에까지 불똥이 튀면서 확전을 경계해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 통상전문가는 “추가 수출을 허용한 건이나 일부 인사 발언만을 두고 아베 정권의 기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면서도 “자국 수출 기업에 피해가 갈 뿐 아니라 한국인 여행객 감소로 경제적 피해가 누적되다 보니 사태 수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미묘한 기류 변화 속에 다음 달 예정된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이 양국 관계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일본은 자국과 국교를 맺은 세계 195개국 국가원수와 대사를 초청해둔 상태다. ‘지일파’로 알려진 이낙연 국무총리가 직접 대일 외교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다수의 국가가 참석하는 만큼 양국 고위급이 별도로 만나는 것보다 부담이 덜하다”이라며 “우리가 축하 메시지를 내놓는다면 일본도 국가적인 경사 날인 만큼 비우호적으로 나오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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