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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요트의 탄생

1661년 영국 왕실 요트 레이스

[오늘의 경제소사] 요트의 탄생
1675년 국왕 찰스 2세가 영국 함대 방문차 타고 온 요트. /위키피디아

1661년 10월1일 영국 런던 외곽 그리니치. 두 척의 소형 선박이 레이스를 펼쳤다. 코스는 그레이브젠드를 돌아오는 37마일(59.55㎞). 템스 강가에는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국왕 찰스 2세와 그의 동생 제임스의 경주였기 때문이다. 결과는 국왕의 승리. 초반전은 동생이 앞섰으나 귀로에서 뒤바람을 한껏 받은 찰스 2세가 속력을 내 100파운드를 땄다. 왕정복고 후 잦은 이벤트로 민심에 파고들려던 33세의 국왕 찰스 2세는 망명 시절 즐겼던 취미인 요트로 런던 시민들의 이목을 끌어들였다. 세간의 주목 속에 경주가 끝난 뒤 영국에는 ‘요트 레이스’라는 신종 해양 스포츠가 생겼다.

소형 선박 경기는 선사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근대식 요트의 여명을 밝힌 나라는 네덜란드다. 유럽 최고의 조선 산업이 뽑아내는 각종 선박 중에서 ‘야흐트(jaghts)’라는 소형 쾌속 범선이 정찰과 우편 용도는 물론 대부호들의 레저용으로 인기를 누렸다. 10여년의 망명 생활에서 요트를 즐겼던 찰스 2세는 왕정복고 당시 네덜란드에서 선물 받은 최신 요트 ‘메리호(100톤)’를 갖고 들어왔다. 영국의 조선 명가 펫 가문은 메리호를 영국식으로 발전시켜 두 척의 요트를 만들어냈다. 국왕용 ‘케서린호(94톤)’와 왕제(王弟)용 ‘앤호(100톤)’가 템스강에서 벌인 왕실 요트 경기는 ‘국산화 1세대 요트’가 선보인 무대였던 셈이다.

찰스 2세가 사망(1685년)할 무렵 국왕 소유 요트는 28척으로 늘어났다. 왕실의 지대한 관심 속에 귀족과 신사들도 너나없이 신종 해양 스포츠에 뛰어들었다. 당시 요트는 100톤 안짝으로 함포 8문에 승무원 30여명을 싣는 게 보통. 소형 선박이었지만 건조비는 대형 범선에 버금갔다. 부자들은 내부를 호화판으로 치장하고 조금이라도 더 빠른 속도를 내는 데 아낌없이 돈을 썼다. 증기선 출현을 전후해 유럽 각국이 범선의 속도를 조금이라고 더 끌어올리는 경쟁을 펼쳤던 것도 요트 경주의 연장선이다.

바람을 이용한 속도 경쟁은 옛날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세계 각국의 경쟁이 한창이다. 풍향의 각도와 물살의 세기 측정에 유체역학·기상학·소재공학을 총동원한다. 미국은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요트 건조를 주도할 정도다. 기계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바람으로만 순간 시속 75노트를 내는 괴물도 나타났다. 지구를 40일 23시간 만에 일주한 요트도 있다. 아쉬운 대목은 미국과 유럽의 독무대라는 점. 동양이 경쟁 대열에 끼지 못한 유일한 분야가 해양 스포츠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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