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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스포츠문화
[休]잔혹한 인간성에 대한 회의·공포…80년전 아픔 고스란히 품은 아우슈비츠

옷·신발·머리카락 더미·독가스실 등

대학살의 현장 박물관으로 영구 보존

유네스코 세계유산…年 200만명 방문

아우슈비츠 수용소 건물.




아우슈비츠 수용소 건물.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 철문 위쪽으로 ‘노동이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라는 문구가 보인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건물.


아우슈비츠로 끌려온 수용자들 사진.


아우슈비츠로 끌여온 수용자들 사진.


지난달 23일 폴란드 남부 비엘스코주(州)에 위치한 아우슈비츠(폴란드 명 오시비엥침)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학살의 참혹함에 영혼이 잠식당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와 ‘인생은 아름다워’를 볼 때는 느끼지 못했던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과 공포감이 밀려오는 동시에 구원의 의미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

수용자들로부터 수거한 아기 옷과 신발 등.


수용자들로부터 수거한 가방들.


수감자들의 깎은 머리카락 더미.


수용자들로부터 수거한 신발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지난 1940년 나치친위대(SS) 총사령관 하인리히 힘러에 의해 전체 28동이 3열 횡대로 세워졌다. 수용소가 이곳에 들어선 것은 도심과 떨어져 있고 근처에 철도가 지나고 있어 대량 수송에 용이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유대인 110만명을 비롯해 폴란드인 14만~15만명, 집시 2만3,000명, 소련연방 전쟁포로 1만5,000명 등 무려 150만명이 학살당했다. 1947년 폴란드 의회가 박물관으로 영구 보존하기로 결의하면서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꾸며졌다. 1979년에는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연간 방문객 수는 200만명에 달한다.

수용소 전시관을 따라 들어가면 아돌프 히틀러의 사진부터 당시 영문도 모른 채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이들의 흑백사진이 빼곡하다. 대량 학살이 기다리리라고 생각조차 못했겠지만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이들에게서 빼앗은 안경, 신발, 옷, 가방, 식기, 돈, 자른 머리카락 더미 등이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돼 있다. 나들이나 데이트를 위해 신었을 법한 신발 더미에서는 참혹한 운명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마음이 무거워 걸음을 떼기 어려웠다.



독가스로 대량학살을 자행하던 당시를 재현한 모형물.


독가스 방의 모습으로 천장 위의 구멍으로 나치는 독가스를 살포했다.


고문이나 학살 장소를 지날 때는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치는 독가스실을 집단 샤워장으로 속여 수용자들을 가둔 뒤 학살했다. 천장의 가스 구멍을 보노라니 지금도 독가스가 흘러나오는 것 같은 공포감이 들었다. 사람이 겨우 들어가는 작은 방에는 이른바 ‘아사방’이라는 굶겨 죽이는 방도 있었다. 폴란드인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1894~1941년) 신부가 바로 이 방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는 동료 수사들, 유대인과 폴란드 난민들을 위해 쉼터를 마련해주다 1941년 체포돼 아우슈비츠로 끌려왔다. 그는 수용소에서도 고해성사와 상담을 해주다 발각돼 실신할 정도로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또 죽음을 선고받고 “저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습니다. 죽기 싫어요”라고 울부짖는 이를 위해 자신이 대신 죽겠다고 자처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1941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사방’ 수용자들이 콜베 신부에게 묵주기도와 성모 찬가를 바치다 죽어가는 모습에 감명을 받은 한 간부가 이를 기록해 지금까지 그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글·사진(아우슈비츠)=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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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5 11:36:16시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