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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유럽을 잉태한 알레시아 전투

카이사르, 갈리아 정복

[오늘의 경제소사] 유럽을 잉태한 알레시아 전투
카이사르 앞에 무릎 꿇기 직전의 갈리아 부족장 베르킨게토릭스. 알레시아 전쟁은 유럽을 탄생시켰다.



기원전 52년 10월3일 알레시아(프랑스 디종과 오를레앙 중간 지역). 갈리아 부족 연합을 이끌던 베르킨게토릭스가 로마군 진영으로 말을 몰았다. 말을 타고 카이사르의 주변을 한 바퀴 돈 그는 말없이 무릎을 꿇었다. 7년간 이어진 로마와 갈리아와의 전쟁도 이로써 끝났다. 카이사르가 쓴 갈리아 원정기에 따르면 베르킨게토릭스는 세 번의 결정적 전투에 연거푸 패배하고는 부족장들에게 ‘운명에는 양보할 수 없다. 내가 죽어 로마군에 보상하든지, 산 채로 로마군에 인도되든지 한 몸을 바치겠다’며 항전을 끝냈다.

알레시아 전투에서 로마군은 기적에 가까운 승리를 일궈냈다. 구릉 위에 위치한 알레시아는 골족(켈트계 갈리아 부족)에게 성지와 같은 성채 도시. 해발 150여m 언덕에 주변의 평원을 한눈에 살필 수 있었다. 청야작전과 기병 기습전으로 로마군을 수차례 곤경에 빠트렸던 베르킨게토릭스는 8만여 병력으로 알레시아에서 웅크리며 구원군을 기다리면 6만 로마군을 격멸할 수 있다고 믿었다. 카이사르는 이에 맞서 전대미문을 전법을 썼다. 포위군이 4m 높이의 성채를 양방향으로 건설한 것이다.

로마군은 알레시아를 향한 성채를 완공하고 외부 구원군에 대비한 성채까지 쌓았다. 안쪽의 둘레는 11로마마일(약 16.5㎞), 바깥쪽은 14로마마일(21㎞)에 달하는 대규모 공사였다. 적병의 접근을 막기 위해 성벽 밖에 깊이 6m의 ‘U자’형 참호까지 팠다. 너비와 깊이가 각각 4.5m인 참호 두 개를 더 파서 한 곳에는 강물을 끌어들였다. 참호 사이에는 뾰족한 나무와 쇠갈퀴 등을 깔았다. 로마군은 불과 한 달 만에 모든 공사를 마쳤다.

결국 베르킨게토릭스의 구조 요청에 26만 갈리아 부족 전사들이 모였으나 카이사르의 방벽에 막혔다. 로마군에 연전연승하는 프랑스 만화 ‘아스트릭스와 친구들’과 달리 갈리아 부족은 로마화의 길을 밟았다. 로마의 갈리아 정복은 유럽을 탄생시킨 출발점인 셈이다. 로마 공화정의 제국으로의 변천과 영토 확장에서 유럽이라는 공간적 개념과 동질성이 생성되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알레시아 전투의 로마군 전사자는 1만2,800명. 7년간의 갈리아 전쟁에서 사망한 로마군 3만여명 가운데 43%가 여기서 죽었다.

갈리아 전쟁 전체에서 골족 200만명, 게르만족 46만명이 죽은 것으로 추산된다. 여자와 아이들이 먼저 죽었다. 알레시아성의 갈리아군은 식량이 떨어지자 여자와 아이들을 성 밖으로 내보냈다. 로마군도 이들을 받아주지 않아 양쪽 군대 사이에서 굶다가 죽었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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