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목 시세보기

서울경제

HOME  >  오피니언  >  기획·연재

[오늘의 경제소사] 1918년 서전트 요크

람보병사와 얼빠진 장교

[오늘의 경제소사] 1918년 서전트 요크
미국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앨빈 요크의 전투 장면도. /위키피디아

1918년 10월8일 프랑스 북부 아르곤 숲. 미군 병사 17명이 고지를 급습해 독일군 기관총 진지를 빼앗았다. 순간 다른 언덕 위의 독일군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미군 부사관과 고참 병사 6명이 즉사하고 3명이 부상당한 상황, 선임 병사가 된 앨빈 요크 상병은 이등병들에게 부상자 치료와 포로 감시를 맡기고는 홀로 떠났다. 독일군의 모든 기관총을 잠재운 그는 포로 132명과 함께 돌아왔다. 적군 28명을 사살하는 전과도 올렸다. 미군 최고의 명예인 의회 메달을 비롯해 세계 50개국에서 그에게 훈장을 내렸다.

750만여명에 이르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 중 가장 용맹하다는 평가를 받은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엘리트 군인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테네시의 가난한 가정에서 1887년 태어나 어려서부터 온갖 노동을 하며 자랐다. 학교도 9개월 만에 접고 11세부터는 가족의 식량을 구하러 사냥에도 나섰다. 교회에 다녔으나 걸핏하면 거칠게 싸우고 술에 취한 적도 많았다. 20대 중후반 회개 사건을 겪은 뒤 사람이 달라졌으나 문제가 생겼다. 종교적 이유로 징집을 거부한 것.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소수 교파 소속이던 그는 결국 만 29세 나이에 강제로 군에 끌려갔다.

전투 병과를 회피하던 그는 훈련소에서 마음을 고쳐먹고 전투부대에 자원, 전무후무한 전공을 쌓았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홀로 독일군에 접근한 요크 상병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오가며 소총으로 적병을 ‘사냥하듯’ 사살해나갔다. 탄약이 소진될 즈음 총검을 든 독일군 6명이 함성과 함께 돌격해오자 권총으로 모조리 눕혔다. 앨빈 상병을 측면에서 공격하려고 우회한 독일군 발머 중위 역시 권총 사격을 퍼부었지만 전부 빗나갔다. 발머 중위는 이 순간 ‘부대 전체가 항복하겠다’고 제안했고 앨빈은 받아들였다.

영웅으로 각광받은 앨빈은 거액 광고모델 제의를 마다하고 오두막으로 되돌아갔다. 2차 세계대전에도 자원했으나 나이와 과체중으로 입대가 불허된 그는 명예 소령 계급장을 달고 전비 모금행사에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테네시주 민병대 대령으로 임명된 그는 병마에 시달리다 1964년 생을 마쳤으나 국립공원와 대공전차·함정에 이름을 남겼다. 궁금한 게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서 람보로 변한 30대 아저씨 병사’가 요즘도 가능할까. 중대원을 병사 한 명에 넘기는 얼빠진 장교가 우리에게는 없을까. 독일군 장교는 ‘항복을 신의 뜻’으로 여겼단다. 병든 종교는 사람뿐 아니라 군대와 나라까지 망친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XC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이메일 보내기

보내는 사람

수신 메일 주소

※ 여러명에게 보낼 경우 ‘,’로 구분하세요

메일 제목

전송 취소

메일이 정상적으로 발송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