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목 시세보기

서울경제

HOME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백상논단] 재정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한국국제통상학회 회장
내년 513조5,000억 슈퍼예산
경제성장 위한 필수조건이라지만
3분기 정부 성장기여도 0.2%P뿐
지속가능성없는 자금 투입 많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방점을

  • 2019-10-27 17:34:36
  • 사외칼럼


[백상논단] 재정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강인수

2020년 예산안 심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513조5,0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슈퍼예산이 편성돼 어느 때보다도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 이번 예산과 관련된 이슈는 크게 ‘적정성’과 ‘건전성’ 두 가지로 요약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국회에서 열린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확장적 재정정책이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강조했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무역분쟁과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세계 경제 침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고 대내적으로는 저성장과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투자부진에 따른 일자리 부족 등 구조적 문제가 산적해 적극적인 확장재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초저금리가 지속되는 불황국면에서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정부는 10년 만에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재정’을 편성했다.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중앙정부의 통합재정수지가 올해 6조5,000억원 흑자에서 내년 31조6,000억원 적자로 전환된다. 정부는 ‘확장재정’이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이는 ‘세수 확충’을 통해 ‘재정 건전성’이 강화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정부의 바람이 기대대로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동안 소득주도라기보다는 정부주도로 성장을 이끌어왔던 정부정책이 한계에 부딪힌 모습이다. 올해 3·4분기 성장률이 전기대비 0.4%에 그치면서 사실상 올해 2% 성장도 어려워졌다. 정부의 성장기여도는 2분기 1.2%포인트에서 3분기 0.2%포인트로 급감했다. 기저효과라기보다는 정부의 재정지출이 민간의 투자·소비를 이끌어내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단발성 일자리 확대를 비롯한 현금성 사회보장 중심의 재정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내년 예산안을 부문별로 보면, 일본 수출규제 대응을 위한 예산이 포함된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부문이 27.5% 증가한 23조9,000억원으로 증가폭이 가장 크다. 일자리사업 예산도 21.3% 증가한 25조8,000억원으로 편성됐고, 연구개발(R&D)과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도 각각 24조1,000억원, 22조3,000억원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부는 첨단혁신기술과 소재·부품·장비 산업 등 혁신성장 부문에 올해보다 50% 늘어난 15조9,000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가 혁신성장과 관련된 예산증액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현재 국가정책이 재정에 큰 부담을 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2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렸던 건전재정포럼에서 지적된 것처럼 재정지출 증가율이 최근 3년간 명목 경제성장률의 2∼3배에 달하기 때문에 정부부채 증가속도가 다른 국가에 비해 훨씬 빠를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의무지출 비중이 커지면서 가파른 재정건전성 악화는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기초연금 인상(연 3조원), 아동수당(연 3조원), 누리과정 전액 국고 지원(연 2조원), 문재인 케어(연 5조~8조원), 공무원 17만4,000명 확충에 필요한 인건비 연 3조원과 공무원연금 국고보전금 21조원(2018~2088년) 등 현 정부에 들어서면서 추가적인 부담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의 정책집행 키워드로 내세운 △더 활력 있는 경제를 위한 ‘혁신’ △더 따뜻한 사회를 위한 ‘포용’ △더 정의로운 나라를 위한 ‘공정’ △더 밝은 미래를 위한 ‘평화’가 희망사항에 그치지 않고 실현되기 위해서는 ‘재정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주도로 경제지표를 끌어올리기보다 대내외 경제여건이 불안한 상황에서 기업과 개인이 안정적인 투자·소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말로만 ‘혁신’이라고 외쳐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재정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쏟아부은 돈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규제와 시스템의 획기적인 재정비가 필수적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지출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관련 예산을 ‘얼마나’ 늘리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용하는지임을 명심해야 한다. 슈퍼예산이 편성됐음에도 내년에 ‘선거용’ 추경예산이 또다시 편성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틀리기 바란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XC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이메일 보내기

보내는 사람

수신 메일 주소

※ 여러명에게 보낼 경우 ‘,’로 구분하세요

메일 제목

전송 취소

메일이 정상적으로 발송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