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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스토리]"고품격에 젊은 감성 입혀...사람들에 꿈을 주는 옷 만들것"

■김소영 장미라사 대표

클래식과 올드는 종이 한장 차이

'속도의 시대'에 맞서 정통 비스포크 실현

60년 이어온 기술력 그대로 살리되

젊은층 겨냥 가격 낮춘 '1956' 선봬

젊은 시절부터 스타일링 감각 남달라

결혼후 이탈리아서 헤어·뷰티 섭렵

매니저로 입사후 5년만에 대표 꿰차







‘속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소공동의 한 양복점은 이로부터 한 발자국 비켜나 있다. 어렵게 시간을 맞춰 매장을 방문하면 한 시간 동안 맞춤복 제작을 위한 상담이 이어지고 옷을 실제로 입어보기까지는 무려 2주를 기다려야 한다. 바로 이곳은 손님이 ‘말하는 대로(be spoke)’ 세상에 하나뿐인 맞춤슈트를 제작하는 정통 비스포크 브랜드 ‘장미라사(JANGMEERASA)’다.

장미라사는 최고급 원단에서부터 부자재까지 고객의 취향을 100% 반영하다 보니 가격대가 상당하다. 슈트 한 벌의 평균 가격이 300만~400만원. 가격만큼이나 압도적인 분위기의 매장을 예상했지만 최근 방문한 장미라사의 소공동 매장은 이상하리만큼 편안했다. 짙은 녹색으로 통일된 벽에는 은은한 노란 불빛이 비치고 매장 곳곳에는 ‘신사의 옷장’처럼 슈트 샘플이 가지런히 걸려 있다.

올 2월 장미라사 역사상 첫 여성 수장이 된 김소영(49·사진) 대표는 고객들을 위한 ‘힐링 공간’으로 매장을 전면 개편했다. 김 대표는 “백화점에 가면 100만원대 후반에도 해외 유명 정장을 살 수 있는데 손님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이곳을 찾는다”면서 “옷을 잘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손님들이 기꺼이 올 수 있는 마음이 들도록 매장을 꾸몄다”고 말했다.

◇성공에 함께 다가서는 ‘동반자’=장미라사는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각별한 애정이 담긴 브랜드다. 원단 테스트를 위해 당시 제일모직의 산하 부서로 출발했지만 “원단을 생산하는 회사가 옷을 만들지 않는 게 말이 되는가”라는 이 회장의 말에 이탈리아 장인까지 데려오며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다. 당시 이탈리아 장인으로부터 기술을 배운 재단사도 지금껏 장미라사를 지키고 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장미라사는 최근 한층 젊어졌다. 성공한 중장년층만을 위한 옷이 아니라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젊은 층을 위해 가격대를 절반 수준으로 낮춘 세컨드 라인 ‘1956 장미’를 선보인 것. 1956은 장미라사가 탄생한 해이자 19~56세 고객들의 삶의 여정과 동행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역사가 길면 클래식하고 기품이 있다는 뜻이지만 종이 한 장 차이로 올드하다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어요. 요즘 소비자들로부터는 반응이 없고 브랜드가 죽어간다는 것이죠. 장미라사가 올드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젊은 사람들한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장미라사의 옷은 자동차로 비유하면 최고급 자동차인 ‘롤스로이스’ ‘부가티’의 핸드메이드 버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게 젊은 사람들한테 꿈을 줄 수 있을까. 오히려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겠다 싶었어요. 반면 ‘레인지로버’ ‘아우디’ ‘BMW’ 등은 내가 열심히 일해서 한 번은 타고 싶은 차라고 다가올 수 있죠. 1956 장미는 아우디나 BMW처럼 현실을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들의 옷이 되게 하고 싶었어요. 결국 우리는 성공 사다리의 끝에서 장미라사 클래식으로 꿈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김 대표는 세컨드 라인의 가격 절감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했다. 우선 글로벌 명품 브랜드에 납품하는 유명 영국 원단 회사인 럭셔리패브릭그룹에서 285만원대의 ‘새빌 로’ 원단을 3분의1 가격으로 독점 공급받아 가격대를 대폭 낮췄다. 100% 핸드메이드 대신 수작업 느낌을 살려주는 기계를 함께 사용해 인건비를 절감했다. 안감과 부자재의 선택지를 줄이는 대신 납품 물량은 키워 단가를 낮출 수 있었다. 물소 뿔을 깎은 단추를 그대로 사용하되 선택의 폭은 좁히는 식이다.

그는 “숙련된 재단사분들이 패턴을 뜨기 때문에 60년 넘는 시간 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기술력은 슈트에 그대로 담긴다”면서 “기존 라인의 안감에 70~80가지 선택지가 있다면 세컨드 라인은 15개로 줄여서 대량으로 주문한다”고 설명했다.

◇‘재능’에 ‘노력’을 입히다=김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드레스룸을 따로 둘 만큼 옷을 좋아했지만 전공으로 택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많이 팔리는 기성복은 배우고 싶지 않아서다. 그가 패션업에 발을 담근 것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였다.



“평소에 슈트를 잘 입으셔야 하는 아버지가 저한테 스타일링을 많이 부탁했어요. 넥타이 색상과 슈트를 매치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게 제 몫이었죠. 남동생의 옷도 제가 코디해줬어요. 믹스매치(서로 다른 느낌을 주는 대조적 이미지를 섞어 새로운 멋을 추구하는 패션스타일)하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대학생 때는 그냥 입은 옷이 하나도 없어요. 청바지를 보면 어딘가를 찢고 싶고 찢은 부분은 손수건으로 다시 묶었죠. 가방도 한 귀퉁이를 자르고 스웨이드를 덧댄 뒤 머리카락처럼 땋아놓기도 했어요.” 스타일링에 대한 감각은 그렇게 젊은 시절부터 남달랐다.

1997년 김 대표는 결혼한 후 남편과 함께 이탈리아로 떠났다. 이탈리아는 눈길을 두는 곳마다 그에게 영감을 줬다. 멋들어진 슈트에 슬리퍼를 신은 이탈리아 남성에서부터 동화마을을 연상시키는 알록달록한 베네치아 부라노섬까지 이탈리아는 그에게 배움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김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헤어쇼를 접하며 스타일링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로레알에서 협찬하는 헤어쇼를 보게 됐어요. 무대에서 커트·염색 등을 하는 쇼였는데 너무 멋있었죠. 이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UNASAS 아카데미에서 헤어·뷰티 등 스타일링과 관련된 것을 배우고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3년 과정이었는데 1년 반 만에 졸업했죠. 지금 와서 보니 스타일링을 배운 그때의 경력이 지금 많이 도움되고 있어요. 헤어스타일은 옷만큼이나 사람의 인상을 좌우하니까요.”

김 대표는 이탈리아의 원단 업체와 한국 패션 회사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며 현업에 뛰어들었다. 장미라사와 연이 닿은 것도 이때였다. 이영원 전 장미라사 대표가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당시 장미라사에서 사용할 캐시미어 원단을 함께 골랐다. 2014년 한국에 들어와 장미라사 매니저로 입사한 김 대표는 5년여 만에 대표 자리에 올랐다. 김 대표는 “사실 테일러숍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지만 이탈리아에 있을 때부터 장미라사에서 일하는 게 제 운명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이라크 전쟁 중 수상의 옷을 맞추기 위해 바그다드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장미라사가 국가적 비즈니스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역사를 만드는 데 관여하는 기업을 맡아 경영할 수 있다는 것에서 사명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뜨거운 열정과 진솔함이 키우는 장미라사=“이탈리아 가죽 업체 중에 지금까지 가장 많은 거래를 했던 곳이 있어요. 구찌의 한 라인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사만타’인데 이쪽 사장에게 처음으로 연락할 때 e메일을 썼어요. 한국의 한 패션 회사가 저를 통해서 가죽을 사고 싶어하고 저는 가죽을 잘 모르지만 사만타와 거래하고 싶다고요. 솔직하게 임해서인지 제가 e메일을 쓰면 대표가 꼭 답을 했어요. 사만타 대표와도 이렇게 만났고 거래를 시작할 수 있었지요.”

김 대표가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진솔한 ‘요청의 힘’이 컸다. 김 대표는 “저의 장점은 제가 모르는 부분은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하고 싶은 열정을 보이고 그만큼 노력한다는 것”이라며 “저를 믿어주고 책임을 주는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보답을 하기 위해 더 빨리 배웠고 그 결과 인연의 깊이도 깊어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고객들한테도 진솔함을 전한다. 손님을 귀하게 여기는 만큼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에는 과감하게 ‘노(NO)’를 외치는 것이다.

“저를 믿고 장미라사를 사랑하는 손님들은 차를 마시다가도 생각하고 연락을 드려요. 지난번에 수술을 하셨다고 했는데 지금은 건강해지셨는지 하고요. 사람이 100% 순수할 수는 없지만 저는 항상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최근에는 한 단골손님이 온몸에 암이 퍼져서 옷을 하러 오지 못한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지금이 그 고객에게 순수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에 지속적으로 안부를 여쭈었지요. 그 손님은 암을 이겨내시며 매장을 방문하고 계시답니다.”

직계 가족에게 세습되지 않고 브랜드에 대한 최고의 애정과 재능을 가진 전문가가 물려받아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도 장미라사의 장수 비결로 보인다. “장미라사는 직계 가족에게 세습되지 않고 지금까지 내려왔어요. 선대 회장님들이 장미라사를 사랑한 것처럼 저 역시 자녀가 이 브랜드를 맡아서 운영할 사랑과 재능이 있지 않다면 물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투명하게 내려온 것이 장미라사가 지금까지 새로움을 추구하며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허세민기자 semin@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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