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업계를 대표하는 장수 최고경영자(CEO)인 차남규(사진) 한화생명(088350) 부회장이 임기 4개월을 남기고 용퇴했다.
한화생명은 차 부회장, 여승주 사장 각자 대표이사 체제에서 여 사장 단독 대표 체제로 변경됐다고 2일 공시했다. 지난 2011년 대표이사 취임 이후 4연임 신화를 기록하며 9년간 한화생명을 이끌어온 차 부회장이 지난달 30일 갑작스럽게 사의를 표명한 데 따른 것으로 생보업계에서는 차 부회장이 내년 3월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생보업계가 새로운 경영 환경에 직면한 만큼 역량 있는 후배들로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차 부회장의 바람”이라며 “상품 판매채널 다변화와 인슈어테크 투자, 미래 성장동력 확보 등 산적한 과제를 안게 된 여 사장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주기 위한 용단”이라고 전했다.
1979년 한화기계에 입사한 차 부회장은 2002년 한화그룹이 대한생명을 인수할 당시 지원부문 총괄전무를 맡아 보험업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2년간 한화테크엠 사장을 맡았다가 2009년 6월 한화생명 보험영업총괄 부사장으로 재합류한 뒤 2011년 2월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고 2017년 11월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차 부회장이 대표로 재임한 기간 한화생명은 자산 110조원 돌파, 수입보험료 15조원대 달성 등의 외형성장에 성공했고 중국·인도네시아 법인을 잇따라 설립하며 글로벌 진출에서도 성과를 냈다. 또 그룹 차원에서는 한화생명-한화자산운용-한화투자증권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단순화 작업을 진두지휘해 7월 금융계열사 수직계열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새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 등 제도 변화와 급격한 저금리 환경에서 한화생명은 위기를 맞았다. 과거 판매한 고금리 확정형 상품 계약에다 3~4년 전 집중 판매한 양로보험까지 금리 하락기에 부메랑으로 돌아오면서 2017년 5,255억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3,593억원으로 줄었고 올해 3·4분기까지 누적 순익은 전년도의 40% 수준에도 못 미친다. 연이은 주가 하락으로 한화생명의 순자산가치(PBR)는 0.16배로 생보업계 평균(0.3~0.4배)을 밑돌고 있다.
차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사임은 이 같은 실적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 사장에게는 IFRS17, 신지급여력제도(K-ICS) 등 2년 후로 다가온 제도 변화에 대응해 자본을 확충하고 상품 포트폴리오와 판매 채널을 재편하는 한편 수익성과 건전성을 동시에 끌어올려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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