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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대륙이 빚은 원초적 조각...피카소·마티스도 반했다

[김영나의 미술로 보는 시대-아프리카 문화 전시]

19세기말 식민지 개척 나선 유럽, 阿서 원시조각 등 약탈·수집해 전시

거침없고 강렬한 이질적 표현으로 근현대 미술가 작품에도 큰 영감 줘

가면·수호자상·'이페왕' 두상 등 종교적 신념이나 부귀·권력 상징

원래 예술품으로 제작되지 않아...'미술로 봐야 하나' 논란 일기도

파블로 피카소의 1907년작 ‘아비뇽의 아가씨들’




‘아웃 오브 아프리카’라는 영화가 있다. 1985년에 개봉한 영화로 덴마크의 작가 카렌 블릭센이 1914년부터 1931년까지 캐냐에서 커피 농장을 운영하며 살았던 자전적인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줄거리는 주연 배우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래드포드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광활하고 아름다운 아프리카 풍경의 장관에 빠지게 하면서도 백인이 이곳을 지킨다는 설정에 약간의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인 아프리카는 오늘날 한 편에는 현대 유럽과 같은 삶을 누리고 있고 다른 한 편에는 상자 곽 같은 비좁은 집들이 몰린 빈민촌이 있으며 아직도 전통문화를 사수하려는 마사이 족이 공존하는, 다양하지만 혼란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이것은 민속품이나 미술품 이해에서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 대륙에 유럽 선박들이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이미 15세기부터였고 17세기부터는 유럽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지만, 그곳에서 제작된 민속품이나 미술이 새롭게 인식된 것은 19세기 말부터였다. 산업혁명 이후 물질과 기술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둔 유럽은 19세기 후반부터 아시아·아프리카·오세아니아 등 비서구 지역의 풍부한 자원에 눈독을 들이며 제국주의적 확장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나라들은 이들 지역의 미술품과 민속품 등을 구입하거나 약탈했고, 이 물건들을 파리의 옛 트로카데로 민속학박물관(후일 대부분 2006년에 개관한 케 브랑리 박물관으로 옮겨졌다)이나 독일의 베를린과 드레스덴의 민족학박물관, 그리고 영국박물관 같은 곳에 전시했다. 아프리카 조각 수집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지만 원래 부족사회에서 제작하던 조각들은 이미 거의 사라졌고 현재 구할 수 있는 조각들은 외국인을 위해 관광용품으로 만든 것들이다.

19세기 말에 유럽에서 수집하던 물건들은 주로 현재의 나이지리아, 아이보리코스트, 가봉 등 사하라 이남 서아프리카에서 온 것이었다. 이곳은 원주민이 노예로 많이 끌려간 지역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의 주요 미술품이나 민속품들은 조각, 동굴벽화, 도자기, 바구니나 섬유였지만 유럽인들의 눈에 띈 것은 특히 조각품이었다. 왜냐하면 유럽의 기준으로 순수미술로 인식된 것은 조각이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물건들이 유럽의 박물관에서 전시되자 이를 처음 접한 미술가들은 거침없고 강렬한 이질적인 표현력에 열광했다. 1905~1906년 경부터 파리에서 활약하던 앙리 마티스나 앙드레 드랭, 또한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들이 아프리카 조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중 일반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화가는 파블로 피카소였다. 피카소가 아프리카 조각에서 받은 영감이 극적으로 나타난 작품은 1907년에 5명의 매춘부를 그린 유명한 ‘아비뇽의 아가씨들’이었다. 화면 오른쪽 두 여성은 난폭하리만큼 야만적인 얼굴로 화면의 조화를 깨뜨리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처음부터 피카소가 이렇게 그렸던 것은 아니었다. 여러 번 수정을 가한 이 작품에서 두 여성의 얼굴은 마지막에 고쳐 그렸는데 그 이유는 피카소가 트로카데로 박물관에서 본 아프리카 조각들에서 받은 강한 인상 때문이었다. 이 여성들에게서 느껴지는 사나움은 이제까지 서구 미술에 나타난 이상화되거나 사실적인 여성의 얼굴과 달랐다. 당시 피카소는 서구 전통에서 잃어버린 원초적 감각과 마술적 힘을 느꼈다고 말했다.

19세기 기니에서 제작된 ‘님바 마스크’


이후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실제 아프리카에서 그 조각들을 제작한 사람들은 자신을 미술가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조각이 개성의 표현이거나 감상용이 아니라는 사실, 오히려 일종의 의식용이거나 권력·다산·부귀 등을 상징하는 것임이 알려졌다. 아프리카 대륙에 살던 사람들은 호의적이지 않은 자연환경 속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혹은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조형물이나 부적들을 만들어 생활했던 것이다. 유럽 미술가들이 격렬한 감정표현으로 해석했던 마스크 조각은 지역과 종족에 따라 다양한 종류와 기능이 있었다. 단지 얼굴을 가리고 위장하기 위한 것 이상으로 춤추는 의식 행위와 긴밀히 연관된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기니에서 발견된 마스크 조각은 ‘님바’ 여신을 상징하는데 님바는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고 임신한 여성을 보호하는 여신이다. 거의 30㎏이 넘는 이 마스크를 얼굴과 어깨에 걸친 인물은 야외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의식을 행하며, 사용하지 않을 때는 오두막에 놓아두고 마을을 보호하도록 했다.

가봉에서 20세기 초에 제작된 ‘수호자 상’. 코타족의 유골함 위에 구리나 황동으로 된 판을 덮어 장식한 용도다.




이렇듯 보호의 기능을 하거나 전쟁의 승리를 가져오기를 기원하는 조각품은 마스크 외에 다른 종류로도 존재했다. 지난 2013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콩고 강, 중앙아프리카의 예술’ 전시에 프랑스의 케 브랑리 박물관이 보내온 ‘수호자 상’은 ‘음불루 은굴루’라 불리는 코타(또는 바코타) 족의 유골함 수호자 상이다. 유골을 담은 바구니 위에 놓인 이 조각은 목조 위에 구리나 황동으로 된 판을 덮어 장식한 것이다. 전반적인 기하학적 면의 대조, 각진 형태, 초승달 같은 머리 위의 관을 가진 이 조각은 20세기 초 프랑스 화가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고 추상조각을 시도하던 이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

유럽의 미술가들은 거칠고 사나운 조각에 열광했지만 사실 아프리카에는 다양한 형식이 존재한다. 1938년 나이지리아에서는 18점의 ‘이페 왕’ 조각들이 발굴됐다. 이 조각들은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 발을 디디기 전인 13세기에 구리로 제작됐는데 요루바 족의 왕을 묘사한 조각으로 왕족들의 장례의식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둥근 타원형의 얼굴은 유럽인들이 피상적으로 알던 아프리카 조각과 달리 아주 사실적이며, 섬세한 묘사와 정교한 기술로 제작돼 아프리카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설이 나올 정도였다.

13세기 나이지리아에서 제작된 요루바족의 ‘이페 왕’ 두상.


아프리카 미술 전시가 점차 많아지면서 서구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의 부적절함은 많은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지난 1985년에 대규모의 전시를 한 뉴욕의 근현대미술관(MoMA)이었다. 이 전시는 관장 윌리엄 루빈이 서문을 썼고 ‘20세기의 원시주의, 부족미술과 현대미술의 유사성’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전시 도록에서는 고갱, 피카소, 자코메티, 브랑쿠시와 같은 유럽 미술가들이 원시 조각에서 받은 영감이 어떻게 작품에 나타났는지를 설명하고, 서로 다른 문화에서 탄생한 미술의 조형적 유사성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 전시는 인류학자들의 거센 반발을 낳았다. 그 이유는 전시 제목에 사용한 원시주의(Primitivism·프리미티비즘)라는 용어 자체가 편견을 갖게 하며, 고유의 문화적 배경과 정체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서구미술과의 조형적 유사성만을 논한다는 건 서구 중심적 횡포라는 것이었다.

‘아프리카:대륙의 예술’이라는 전시가 1995년 런던의 로얄 아카데미 오브 아트와 1997년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렸을 때도 문제 제기가 있었다. 아프리카에는 약 55개의 나라에 900여 부족과 1,000여 개의 언어가 공존하며 각 부족의 역사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을 아프리카인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부족과 연관된 정체성을 가진다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아프리카라는 광범위한 제목을 붙이는 것은 수많은 독립적 문화를 축소시키고 단일화시킨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쿠엘레족이 제작한 ‘둥근뿔이 달린 가면’은 영양의 뿔과 숲을 표현한 것으로 의례에 사용됐다.


이러한 논란은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문화의 전시를 할 때에 다각도의 논의와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원래 미술품으로 제작되지 않은 물건들을 과연 미술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어떤 학자들은 미술관에서 이국적인 문화에 대한 전시를 할 때 그 고유한 맥락에 대한 설명이 더 자세해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또 다른 학자들은 미술작품이라는 문맥에서 제작되지 않았더라도 그 미적 가치를 재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과도한 설명은 그러한 인식을 방해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아프리카 문화는 자연사박물관, 민족학 박물관에서도 전시되고 있지만 미술관에서 미술품으로 전시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미술사학자·前 국립중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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