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발을 치고 있다” “한집안 족속도 아닌 남조선” “허망한 꿈”(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신년사를 통해 ‘낮은 단계’의 남북 협력이라도 살려보자고 제안했으나 북한은 다시금 냉랭하게 응수했다. 올해 어떻게든 남북관계의 수레바퀴를 다시 굴리려 하는 문 대통령의 ‘촉진자역’ 입지는 더욱 난관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를 통해 북미관계를 견인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구상 자체가 이미 외교적 효력을 다한 것 아니냐는 냉정한 진단까지 나온다.
문 대통령의 신년사 이후 북한의 첫 ‘공식 반응’이라 할 수 있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의 11일 담화는 철저히 ‘통미봉남’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특히 “저들이 조미관계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보려는 미련이 의연 남아 있는 것 같다”는 김 고문의 언급에 북한의 입장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생일 축하 메시지가 한국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전달됐다는 청와대 측의 외교적 스킨십도 평가절하한 것이다. 또 “남조선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친분 관계에 중뿔나게 끼어드는 것은 좀 주제넘은 일이라고 해야겠다”며 조롱 섞인 반응도 보냈다. 평창 동계 올림픽과 두 번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정상 간 회담 테이블을 마련한 문 대통령의 그간의 노력을 감안하면 청와대로서도 인내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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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고문은 북미 정상의 친분 관계를 여전히 강조하면서도 “우리가 다시 미국과의 대화에 복귀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감을 가진다거나 또 그런 쪽으로 분위기를 만들어 가보려고 머리를 굴려보는 것은 멍청한 생각이다”고도 밝혔다. 이 같은 김 고문의 발언은 미국과의 ‘끝장 협상’을 벌이겠다는 북한의 공세적 기조가 우리 정부의 남북 협력 구상과는 매우 이질적인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은 매우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미국과 승부를 하려 하는데, 남한이 낮은 단계의 협력으로 뭔가를 풀어내겠다는 식으로 메시지를 내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내부) 정치적 계산에 골몰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올해 남북 관계에 있어 다시금 ‘행동’을 시사한 문 대통령은 외교적 입지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신년사를 통해 남북 접경 지역 협력, 스포츠 교류 확대, 비무장지대 유네스코 세계 유산 공동 등재 등을 제안했으나, 북한은 ‘지금은 남한을 상대할 때가 아니다’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 다만 북한이 우리의 중재 노력에 냉소하면서도 남북경협을 구체적으로 비판하지 않은 것은 이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남아있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해석도 청와대 내부에서 나온다./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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