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勢 불리려...30년된 노사합의 깬 現重노조

'자동 탈퇴' 과장급 승진자들에

조합원 신분 유지해달라 공지

"민노총 주문은 무리수" 지적

현대중공업(009540) 노동조합이 기장(과장급) 승진자들에게 조합원 신분을 유지해달라고 공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장은 노조 조합원 신분에서 자동탈퇴하는 직급이지만 조합원 숫자 감소로 교섭력 약화와 조합비 축소를 우려한 노조가 ‘세(勢) 불리기’를 위해 조합원 신분 유지를 밀어붙였다. 일각에서는 민주노총이 제1노총에 오르기 위해 단위사업장 노조에 세력 확장을 주문하며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9일 기장 승진자 180여명에게 “진급으로 인한 조합원 수의 급격한 감소로 교섭력이 저하되는 현실”이라며 “기장으로 승진한 조합원들은 지금 당장 단체협약이 적용되지 않아 다소 불편하고 혼란스럽겠지만 회사와 합의하는 데 힘이 될 수 있도록 먼저 조합원 자격 유지를 당부드린다”고 공지했다.

노조의 이 같은 ‘요청’은 30년 전 노사 최초 단체협약을 뒤집은 것이다. 당시 노조는 기장 직급이 사용자를 대변한다는 이유에서 조합원 자격을 주지 말 것을 요구했고 노사가 합의했다. 그러나 지난해 물적분할(법인분할) 반대 파업에 따른 운영비 증가와 파업 이후 소송비용 등으로 조합비가 부족해지자 노조는 지난해 7월 기장급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행규칙을 슬그머니 바꿨다. 사측은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바꾼 노조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분사와 정년퇴직·진급 등으로 조합원이 줄었지만 조선업황 침체로 신규 채용이 거의 없었다”며 “기장급을 조합원에 포함하면 조합원 수가 1,300여명 확보되고 조합비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동희기자 dwise@sedaily.com

지난해 6월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에서 열린 노조 파업 집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30년 전 단체협약을 깨고 ‘생떼’를 부리려는 것은 노조원과 조합비 규모가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한 처방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해 불법 폭력 집회의 여파로 운영비와 소송 비용 등이 증가해 코너에 몰렸다. 노조의 이런 무리한 ‘세 불리기’ 배경에는 상급기관인 민주노총의 전략도 한몫하고 있다. 국내 제1노총으로 올라선 민노총은 교섭력을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하청업체까지도 끌어안는 전략을 펴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조선업 회복이 시급한 가운데 외형 성장과 제 몫 챙기기에만 몰두하는 노조의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단체협약 개정안을 낸 것은 지난해 7월이다. 노조는 ‘조합비 70% 인상’과 ‘조합원 범위 확대’ 두가지 안건을 두고 투표했고 장(생산직 기장)급 직원도 신분 회복 신청을 하면 조합원으로 받아준다는 내용의 시행규칙을 가결했다. 조합비 인상은 대의원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분사와 정년퇴직·진급 등으로 현대중공업 노조 조합원 수는 5년 전 1만7,000여명에서 1만명으로 줄었다. 업황 부진으로 생산직 신규 채용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노조원 감소를 막지는 못했다. 노조원 감소에 노조집행부가 선택한 것은 무자격자의 자격 복원이다. 노조는 기장급 인원 1,340여명이 노조에 합류할 경우 현재 1만460여명인 노조원이 최대 1만2,000여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여기다 올해 새로 출범한 현대중공업 노조 집행부는 교섭력 강화를 위해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 등 계열사 노조와 공동 교섭단을 꾸리겠다는 방침이다. 한때 19년 연속 무분규를 기록했던 현대중공업은 실적이 어려워진 지난 2013년부터 강성 노조원들이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다.

노조는 30년 전 맺은 단체협약이 현행 직급체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도 주장했다. 노조 관계자는 “기장 직급이 30년 전에는 생산직에서 가장 높은 위치였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위로 2개(기감·기정)의 직급이 추가됐다”며 “사용자를 대변할 정도의 위치가 아니라는 판단에 시행규칙을 개정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노조가 조합원 숫자에 민감한 것은 조합비와 관련이 깊다. 노조는 지난해 5월부터 물적분할 중단을 요구하며 파업을 독려했고 참가한 조합원에게 조합비로 생활비를 마련해주면서 조합비가 부족해졌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세를 불리기 위해 하청업체 근로자들까지 아우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국내 대기업 노조 중 처음으로 사내하청지회와 통합 노조를 꾸렸고 이어 하청업체의 임금·복지까지 현대중공업이 책임지라는 식의 투표를 벌여 가결했다.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하청 근로자 임금을 25% 인상하고 현대중공업 정규직과 같은 학자금·유급휴가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지난해 200여명의 하청지회 근로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했으며 올해는 교육과 선전을 통해 더 많은 수가 가입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직까지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하청 근로자가 1만6,000여명임을 감안하면 단일 노조에서는 정규직 비중을 능가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이 같은 조합원 확충 전략은 상급단체인 민노총의 중앙교섭력 확대 전략에 따른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민노총이 기업 지부 교섭과 금속노조 차원의 중앙교섭력 강화를 위해 이 같은 전략을 제안했다”면서 “금속노조가 정책 차원의 도움을 지속적으로 주고 있다”고 말했다.

민노총은 지난해부터 하청업체와 협력업체 직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민노총 지회 노조를 설립하면서 세를 불리고 있다. 민노총이 국내 1노총으로 올라선 데는 이 같은 전략이 큰 힘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온건·합리 성향의 한노총보다는 강경하게 투쟁하는 민노총의 문을 두드렸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른바 ‘촛불’ 청구서를 들이미는 민노총의 요구를 현 정부가 노동정책에 반영하면서 힘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조선업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한 회사 노조가 세력 확장에만 혈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중공업은 2018년 5,000억원 넘는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 수주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해양플랜트 부문은 일감이 없어 유휴인력 재배치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민노총이 현 정권 아래서 제어 받지 않는 권력으로 커졌다”며 “생존을 위해 뭐든지 줄여도 부족할 상황에서 노조가 몸집 키우기에만 집중하며 조선업 회복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한동희기자 dwis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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