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로터리]디지털 시대 학술정보생태계의 혼란(2)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





국가경쟁력은 그 나라의 연구능력에 일정 부분 비례한다. 연구능력이란 연구자가 창출하는 연구 결과물의 수량과 질적 가치는 물론이지만, 그러한 결과를 얻기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고 또 거둔 성과를 효과적으로 배포하고 공유하는 데 필요한 인적·물적·재정적 지원 시스템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과일나무에 크고 달콤한 과실이 주렁주렁 열리려면 뿌리가 튼튼해야 하고 적당한 햇빛과 강수가 필요하며 과일나무를 가꾸는 일꾼의 세심한 손길이 있어야만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연구자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연구에 필요한 조사와 실험을 수행하고, 그로부터 얻은 결과까지 정리한 초고를 투고하고, 동료심사를 거쳐 논문을 완성해 발표하기까지, 그리고 발표된 논문을 배포하고 공유함으로써 또다시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촉발시키는 일련의 순환과정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학술정보이다. 학술정보가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가 조성돼야 좋은 연구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학술정보생태계라는 운동장에서는 연구자들만이 선수로 뛰는 것이 아니다. 연구자들에게 필요한 학술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가공해 제때에 제공해주는 정보관리자, 즉 사서와 연구자들이 논문을 발표하고 유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출판사, 생태계 환경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법 제도와 정책을 만들고 재정지원을 하면서 그 대가로 연구 성과를 가져가기도 하는 정부나 기업·재단 등 다양한 선수들이 이해당사자로서 함께 뛴다. 이처럼 학술정보생태계의 양상은 복잡하다. 학술정보생태계의 복잡성은 정보통신기술(ICT)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한층 가중되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과 디지털기술이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보장해줄 것이라는 기술결정론적 주장을 너무 굳게 믿었던 탓일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학술정보생태계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선수들을 너무 빨리, 너무 쉽게 제거해버렸다. 한때 10여 명이 배치돼 연구자들을 지원하던 어떤 과학기술 분야 국책연구소 정보자료실은 조직이 와해돼 달랑 사서 한 명이 지키고 있다.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가 그 역할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계산에서 비롯된 결과일 것이다.

자유로운 유통은커녕 천정부지로 치솟는 학술지 구독 비용을 울며 겨자 먹기로 감당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학술지에 논문을 수록해야 하는 압박 때문에 비싼 게재비용을 감수하는 ‘이중 지불’ 문제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당장의 비용절약을 위해 유능한 정보전문가의 지속적 육성을 스스로 포기한 우리의 계산법은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조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계산을 다시 해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