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장기채권에 수요가 몰리고 있다. 단기물에 육박한 낮은 금리 탓이다. 초과 주문이 이어지자 장기물을 발행해 단기채권을 상환하는 ‘만기 갈아타기’에 나서는 기업들도 많아졌다.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 E&S는 오는 30일 3,8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한다. 사전청약에서 장기물 수요가 몰리자 7년물과 10년물을 각각 400억원씩 증액해 발행한다. 10년물의 인기가 특히 많았다. 700억원을 발행할 계획이었는데 사전청약에만 2,900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예상보다 기관들의 수요가 넘치면서 7년물과 금리 스프레드가 역전되기도 했다. 조달되는 자금은 운영자금과 회사채 상환에 이용된다.
호텔롯데도 다음달 4,000억원 규모의 단기채 상환을 위해 3·5·10년짜리 회사채를 발행한다. 1개월 만기인 기업어음(1,500억원)과 2~3년 만기인 회사채(2,500억원)를 최대 10년물 발행으로 차환하면서 안정적인 자금 조달 구조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LG유플러스(032640)(10·15년물)와 하나금융투자(7년물)도 장기물 발행에 나서면서 만기를 늘렸다. 미래에셋대우(006800) 역시 3·5·7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해 단기사채 3,000억원을 차환한다.
기관들이 장기회사채를 담는 것은 지난 1년간 시장금리가 떨어진 영향이 크다. 회사채 금리가 전체적으로 낮아지면서 수익률을 고려한 기관들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장기채권을 선호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22일 기준 10년 만기 AA등급 회사채의 민간평가사 평균 금리는 2.68%로 지난해 동기 대비 약 30bp(1bp=0.01%p) 이상 떨어졌다. 한국은행이 연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시장금리가 더 떨어질 경우 고금리 채권을 오른 가격에 팔아 시세차익을 낼 수 있다.
여기에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자산운용 기간을 늘려야 하는 보험사들의 수요도 증가했다. 부채(보험계약)평가 기준이 원가에서 시가로 변경되면서 종신보험 등 장기계약이 많은 보험사들은 운용자산들의 만기를 확대해 건전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전망되면서 기관들도 주식보다는 채권을 늘리는 분위기”라며 “금리가 낮고 수급도 원활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큰 기업들의 장기채 발행에 우호적인 여건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경기자 mk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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