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다른 산업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항공 산업은 규제로 10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토니 페르난데스(사진) 에어아시아그룹 회장은 27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국내 항공 산업 수준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자국 항공사들을 과보호하기 위해 만든 한국의 규제 탓에 외항사들은 접근하기 힘들다”며 “유물 같은 규제를 없애야 외항사들의 투자 유치를 통해 시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페르난데스 회장이 꼬집은 규제는 항공기 취득세와 재산세다. 현재 미국과 유럽·일본 등은 사업용 민간 항공기를 국방·외교·경제의 중요자원으로 판단해 이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내는 일부 항공사들만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면제받을 뿐이다. 여기에 항공기 부품을 교역할 때 부과되는 관세 역시 한국에만 존재하는 규제로 꼽힌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한때 박지성이 소속됐던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퀸스파크레인저스(QPR) 구단주로 국내에도 잘 알려졌다. 그는 지난 2001년 동업자 3명과 말레이시아 저비용항공사(LCC) ‘튠에어’를 설립했다. 당시 말레이시아에서는 국적 항공사가 심한 부진을 겪으며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돼 당국이 신규허가를 내줄 리 만무했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전략을 틀어 DRB-하이콤이 갖고 있던 에어아시아를 단 1링깃(약 300원)에 인수했다. 단기간에 LCC로 경쟁력을 확보해 ‘미국 9·11테러’에도 불구하고 인수 당시 함께 떠안은 부채 4,000만링깃(약 120억원)을 2년 만에 상환한 뒤 에어아시아를 150여곳에 취항하는 항공사로 성장시켰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낸 그가 바라본 국내 LCC 시장은 어떨까. 현재 국내 LCC 시장은 과잉공급 속에 일본 불매운동에다 중국발 폐렴까지 겹치면서 수요는 줄어 최악의 상황에 가깝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두 가지 문제점을 꼽았다. 그는 우선 “모든 항공 업계가 서울(인천)에만 집중하는 것이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대형 항공사든 중소형 항공사든 대부분이 수도권 노선에 집중하면서 인천·김포공항의 슬롯만 포화상태인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대형항공사(FSC)와 LCC는 각자 잘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며 “제주·부산 등 다른 지역들의 여행수요가 많기 때문에 지방공항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에어아시아는 ‘부산·제주~쿠알라룸푸르’ 노선과 ‘부산~칼리보’ 노선 등 국내 지방공항을 거점으로 한 신규 취항을 늘리고 있다.
페르난데스 회장이 지적한 또 다른 문제점은 LCC 전용 공항터미널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태국·말레이시아·중국·일본 등은 FSC와 LCC가 사용하는 공항터미널이 다르다”며 “LCC 전용 터미널은 공항시설사용료를 낮출 수 있을 뿐 아니라 환승여객의 편의성 등에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LCC 스스로 고객에게 다양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어야 차별화에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에어아시아는 최근 6억명가량의 승객정보를 모아 항공권을 예약해주는 사이트를 오픈했다. 수년간 축적된 데이터베이스(DB)로 고객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설계해주는 사업에까지 진출한 것이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이 사이트에서는 항공권과 호텔 등 여행과 관련된 예약뿐 아니라 메신저, 건강 관련 제품 등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한다”며 “카카오나 우버보다 더 많은 고객 데이터를 확보한 만큼 다양한 형태의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시진기자 see120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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