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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출장 갔다 '코로나 집시'된 한 중소기업인…"우한폐렴 현지 상황 훨씬 심각"

우한에서 850km 원저우시 출장길에 도시폐쇄 피해 심야탈출

도심조차 인적 드물어 을씨년...어린이 얼굴 완전 가리개 패션

1,900km 떨어진 안순은 아직 확진자 없으나 호텔-식당 폐쇄

현지 자영업자·중소기업인 "경비는 나가는데 어떡하나" 불만

춘제연휴 강제연장 종료 이후 우한폐렴 급속 확산 우려 커져

중소기업인인 이종국씨가 최근 중국 저장성 원저우시로 출장을 갔다가 현지에서 우한폐렴 확진자가 속속 나오며 마스크는 물론 눈에 투명필름까지 쓰고 있다. /사진제공=이종국씨




“이렇게까지 급속히 우한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퍼질지 몰랐습니다. 어느새 바이러스를 피해 떠도는 ‘코로나 집시’가 되고 말았네요.”

우한폐렴으로 중국이 초비상인 가운데 지난 27일 우한에서 동남쪽으로 850km 떨어진 중국 저장성 원저우시로 출장을 떠났던 한 중소기업인이 1,900km를 달려 확진자가 아직 나지 않은 구이저우성 안순시로의 탈출기를 전해왔다.

국내 대형 유통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현재는 관광지인 중국 안순시에 26개국을 아우른 쇼핑몰·아울렛·테마파크를 추진하는 귀주세단치업무유한공사의 한국 파트너인 이종국(사진·57)씨. 그는 28일 밤부터 31일까지 서울경제신문과 잇따라 카카오톡 보이스톡을 통해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현지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며 생생한 체험담을 털어놨다. 그는 “지난 30일 밤 원저우가 폐쇄된다고 해 심야에 급히 빠져 나왔다”며 “현지 파트너들과 함께 22시간 동안 1,900km 가까이 달려 다음 목적지인 안순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가 원저우로 출장을 떠난 것은 지난 27일. 전날 한국에서도 우한에서 귀국했던 남성이 세 번째로 확진판정을 받았다는 뉴스가 나왔으나 중국 지인들이 “우한에서 꽤 떨어져 있으니 괜찮다”고 해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현지에 도착하니 길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호텔에 여장을 푼 뒤에는 아예 난방이 끊겨 추위에 떨어야 했다. 호텔 측에서 “나가 달라”는 뜻으로 중앙난방장치를 꺼버린 것. 날이 밝자 거처를 어렵사리 모텔로 옮기면서 본 시내는 어느새 적막강산이었다. 인구가 900만명이 넘는 도시의 시내버스나 전철에 사람이 거의 타고 있지 않았고 서울의 명동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도심지조차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대부분의 거리에서 자전거로 이동하는 시민만 간간히 보일 뿐 대부분 집에 틀어박혀 있었던 것이다. 식품을 파는 마트만 문을 열었는데 ‘마스크 미착용자는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고 안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어쩌다 본 현지인들은 마스크는 물론 투명필름이나 수경으로 눈까지 가리는 경우도 많았다. 원저우 출신이 우한에 많이 거주하다 보니 우한폐렴 확진자가 대거 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린이용품점 쇼윈도에는 마네킹이 투명하게 얼굴을 완전히 가려주는 모자가 달린 점퍼를 입고 있었다. 시민의 발길이 끊긴 거리에는 음식배달업체 오토바이만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이었다.

중국 저장성 원저우시의 한 어린이용품점에서 마네킹이 투명하게 얼굴을 완전히 가려주는 모자가 달린 점퍼를 입고 있어 우한폐렴의 공포에 휩싸인 현지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제공=이종국씨


그는 “마스크가 원래는 개당 1위안(170원) 정도 하다가 30위안(5,100원)이 넘는데도 동이 나 구할 수 없을 정도로 폭등했다”며 “KF-94(한국 인증)나 N-95(미국 인증) 등 고급 마스크는 품귀현상이 더 심하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지난 30일 밤 현지 파트너들과 술자리를 갖던 중 동석한 원저우시청 공무원으로부터 “내일부터 우한에서 일하던 원저우 사람들이 대규모로 강제 귀향조치 되는데 후커우(호적)가 있는 사람만 받고 나머지는 차단하겠다. 도시를 봉쇄하는 것”이라고 귀띔해줘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결국 다음날 오후 늦게 이동하려던 계획을 바꿔 그날밤 11시쯤 파트너 3명과 함께 식료품을 바리바리 챙겨들고 안순으로 급히 향했다. 그는 “고속도로로 진입할 때 보니 이미 외부에서 오는 차량은 도시로 들어오지 못하게 통제하고 있었다”며 “중간에 장시성과 후난성을 거치는 동안에도 차량이나 사람을 별로 볼 수 없었다”고 을씨년스러운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안순 톨게이트에서는 무장 공안들이 안순시 등록 차량 이외에는 다 돌려보냈으나 다행히 그의 일행이 탄 차는 안순시 등록 차량이라 겨우 들어올 수 있었다.



중국 저장성 원저우시의 도심지가 춘제 연휴인데도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고 현수막만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사진제공=이종국씨


중국 구이저우성 안순시로 들오는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무장 공안들이 안순시 등록 차량만을 통과시키고 있다. /사진제공=이종국씨


그는 “안순(230만명)은 아직 우한폐렴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으나 호텔은 물론 대형식당이나 상점은 문을 다 닫고 일부 문을 연 소형 식당도 ‘마스크 미착용자 절대사절’이라고 붙어 있다”며 “여기도 마스크값이 폭등하고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지인집에 머무르고 있는데 춘제(春節) 연휴가 강제로 연장되면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고 했다. 중앙정부에서 전국 관광지 폐쇄를 결정하면서 연간 약 6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황과수폭포를 둔 안순시도 직격탄을 맞게 됐다는 것이다. 안순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양페이싱(56)씨는 본지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부가 손해를 보충해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호텔을 폐쇄하라고 하면 어떡하느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당초 1월 24~30일이었던 중국의 춘제 연휴는 지역별로 속속 연장조치가 이뤄져 우한 폐렴 발원지인 허베이성은 2월 13일까지, 상하이나 그 위인 장쑤성 쑤저우시는 2월 8일까지로 연장했다. 원저우에서 기계제조업을 하는 판우샹(57)씨도 “조업이 늦춰져 걱정이다. 경비는 나가는데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춘제에 귀향길에 올랐던 몇억 명의 인구가 다시 직장과 학교를 찾아 이동하게 되면 우한폐렴이 추가로 더 크게 퍼질 염려가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02년 11월 중국 광둥성에서 시작해서 세계로 퍼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도 7~8개월 진행됐는데 우한폐렴도 장기화될 수 있어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의 파산 러시가 이어질 것이라는 게 현지의 우려다. 이종국씨는 “현지에서는 그래도 ‘날씨가 따뜻해지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사스 때보다 더 많이 확산되지 않을까 한숨을 쉬고 있다”고 전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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