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곤충을 꼽으라면 단연 메뚜기일 것이다. 메뚜기를 지칭하는 히브리어만 ‘아르베·하가브·솔암·하르골’ 등 9개에 이를 정도다. 출애굽기 10장에는 아르베가 엄청난 숫자로 떼를 지어 다녀 위협과 두려움의 대상이며 농작물을 갉아먹고 초토화하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고 적혀 있다. 메뚜기가 애굽(이집트)의 온 땅을 뒤덮고 날아오르니 하늘이 어둡게 되었고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어 푸른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구절도 등장한다. 다만 이슬람 경전에서는 사막 메뚜기(desert locust)가 ‘알라의 군대’라며 곤충 중 유일하게 먹어도 된다고 권장하고 있다.
사막 메뚜기는 이집트 등 아프리카에서 주로 서식하는데 1㎢당 최대 1억5,000만 마리씩 떼를 지어 날아다닌다. 하루에 자기 몸무게의 2배에 해당하는 작물을 먹어 치우는 잡식성 곤충으로 건조한 바람을 타면 하루에 최장 150㎞를 이동할 수 있어 ‘바람의 이빨’로도 불린다. 사막 메뚜기 떼가 하늘을 날 때는 거대한 구름 형상을 띠며 인공위성에서도 쉽게 촬영이 가능할 정도이다.
2004년 11월 리비아·이집트 등 서아프리카를 습격한 사막 메뚜기 떼는 농경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이스라엘과 포르투갈에서 수백만 명을 기아로 내몰았다. 2013년에는 마다가스카르가 사막 메뚜기의 공격으로 국토 절반이 황폐화하는 큰 피해를 보아야 했다. 당시 마다가스카르 정부는 군대와 항공기까지 동원해 방역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소말리아 등 동아프리카 국가의 정부가 사막 메뚜기 공습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는 소식이다. 케냐와 에티오피아·파키스탄 등으로 번지고 있는 메뚜기 떼는 막대한 양의 작물을 먹어 치워 식량 안보마저 위협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이번 메뚜기 떼 출현은 최근 25년 이래 최악의 상황”이라고 경고했을 정도다. 지난해 가을부터 동아프리카에 예년보다 많은 비가 내리면서 고온 다습한 이상기후가 발생해 사막 메뚜기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메뚜기는 이상기후에서 창궐해 사람을 공격한다니 신종 바이러스에 이어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또 다른 경고가 아닌가 싶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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