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 대형 회계법인 중 한 곳인 EY한영의 서진석(사진) 대표가 임기 1년을 남기고 급작스레 사임했다. 지난 5년간 EY한영의 매출 성장세를 이끌던 인물이 후임도 정하지 못한 채 예고 없이 물러나면서 관련 업계에서는 EY한영 내부에 어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10일 투자은행(IB) 업계와 EY한영에 따르면 대표는 9일 오후10시50분께 임직원에게 e메일로 사의를 표명했다. 2015년 4월 취임한 서 대표는 지난해 4월 연임에 성공해 내년 3월까지 임기를 남겨두고 있었다.
서 대표는 임직원에게 보낸 e메일에서 “지난 5년간 임직원의 노력 덕에 매년 두자릿수대의 빠른 매출 증가세를 기록했고 쉼 없이 달려왔다”며 “이제는 법인 대표로 여정을 마무리하고 ‘비전2020’ 달성을 위한 발전의 토대를 새로운 리더십에 넘기겠다”고 밝혔다.
서 대표는 1990년 EY한영에 입사해 감사·재무자문·컨설팅 등 여러 분야에서 실무와 현장경험을 쌓았고 2012년부터 감사본부장을 지내면서 성장을 이끈 정통 EY한영맨이다. 서 대표 취임 후 국내 4위였던 EY한영은 가파른 성장세로 2위인 삼정KPMG를 바짝 따라잡았다. 2018 사업연도(2018년 3월~2019년 2월)에는 창사 이후 처음으로 매출 4,000억원을 달성했다.
하지만 이런 공격 경영 과정에서 2018년 7월 시행된 주 52시간제가 사임의 방아쇠가 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비용 문제 등 다양한 이유로 당장 인력을 늘리기 힘들자 감사 업무를 보는 일부 회계사에게 근로시간을 축소 신고하도록 한 것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임직원들은 이런 내용을 EY글로벌 본사에 익명으로 제보했고 EY 본사에서는 컴플라이언스 규정상 심각한 문제로 판단해 대표이사 해임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주 52시간을 우회하는 편법으로 감사역량(회계사 수·감사가능시간)이 실제보다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 올해부터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시행되는 상황에서 주요 대기업 고객 유치에 실패해 파트너들의 반발을 산 것도 이유로 전해졌다. 실제로 서 대표가 임직원에게 보낸 e메일에는 첫 번째로 제시되는 키워드가 ‘협업’이다. 간접적으로 임직원에게 섭섭함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서 대표의 사임은 7일 파트너 전체회의를 통해 결정됐다.
EY한영은 12일 파트너총회와 사원총회를 통해 임시 대표를 정하고 향후 대표이사 선임위원회를 열어 신임 대표를 선임할 예정이다. 부대표 중 한 명이 신임 대표로 유력하다는 이야기도 이미 나돌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임직원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노동법 위반 소지가 있는 행동까지 논란이 되면서 서 대표의 입지가 상당히 약해진 것으로 보인다”며 “내부 지지를 받는 신임 대표가 조직을 얼마나 빠르게 다잡는지에 따라 올해 실적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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