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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박미경 한국여성벤처협회장 "여성창업정책, 특혜보다는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 잡아야”

"작년 신설법인서 女 CEO 비중 26.8% '여풍' 거세지만

정부 지원 사업에 여전히 차별 있어 실효성 '유명무실'

보여주기위한 정책도입 지양, 기존제도부터 잘 활용해야"

박미경 한국여성벤처협회장




“과거처럼 ‘여자가 무슨 창업을 하느냐’는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은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여성이 경영하는 기업에 대한 ‘보이지 않는’ 편견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한국여성벤처협회가 존재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도 여전히 나오지만 (우리 협회는) 여성 벤처기업인에게 새로운 정책적 혜택을 더 달라는 게 아니라 유명무실해져 있는 여성 벤처정책의 실효성을 높여달라고 요구하는 것일 뿐입니다.”

박미경(49·사진) 한국여성벤처협회장은 23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이어서 창업을 기피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회장은 지난해 2월 취임해 임기 1년을 맞았다. 사회 전 분야에서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여풍(女風)’은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 조사 결과 지난해 전체 신설법인 가운데 여성이 차지한 비중은 26.8%에 달했다. 벤처기업 중 여성기업 비중은 9.5%를 기록했다. 여전히 남성 최고경영자(CEO)가 다수지만 여성 벤처·스타트업의 기세가 무섭다.

박 회장은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모들은 딸이 창업한다고 하면 ‘네가 무슨 사업을 한다고 그러냐. 월급 잘 나오는 직장에나 들어가라’며 핀잔을 줬지만 지금은 벤처·스타트업 분야에서 여성들의 약진이 만만치 않다”며 “그러나 여전히 ‘여성들이 사업을 키울 수 있겠느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편견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성 기업인이 경영을 잘해나가면 능력을 인정하기보다 다른 이유를 대며 시기하고 잘못하면 ‘그럼 그렇지’ 하는 눈으로 쉽게 봐버린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이런 면에서 여성 벤처기업인은 여전히 (남성들과 비교하면)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여성 벤처기업인에게 뭔가 특혜를 달라는 것은 아니다. 박 회장은 “협회의 존재 이유는 여성 벤처기업만을 위한 뭔가 특별한 혜택을 요구하는 게 절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다만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창업하는 것을 머뭇거리지 않도록 사회적으로 누구나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창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 힘쓸 뿐”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포시에스라는 소프트웨어 업체를 25년 전 창업해 운영해오고 있다. 창업 당시만 해도 여성 CEO라는 이유만으로 은행에서 대출할 때 남편의 보증을 의무적으로 요구하거나 정부 지원사업에서의 차별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동안 정부가 여성 벤처기업을 위한 정책을 잇달아 도입하는 등 성과도 있었다. 지난 2014년부터 공공기관의 물품이나 용역은 구매총액의 5%, 공사발주액의 3%를 여성기업에 할당하는 여성기업 공공구매제를 시행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여성기업의 경우 추정 가격이 5,000만원 이하인 공공기관의 발주에 대해 경쟁 입찰이 아닌 직접 수의계약을 맺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좋은 취지로 도입된 여성 기업인을 위한 제도가 시간이 흐르면서 악용되거나 흐지부지되고 있는 게 문제다. 여성기업 공공구매제도 여성을 ‘바지사장’으로 앉혀 여성기업의 몫을 가로채거나 공공기관이 감사 등을 이유로 여성기업과의 수의계약을 꺼리는 등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선진국과 비교해 한국은 이미 여성기업을 위한 좋은 정책들이 많이 만들어져 있지만 (여성 기업들이) 체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정책의 실효성이 낮기 때문”이라며 “기존의 정책이 잘 활용될 수 있게 정부가 꼼꼼하게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 회장은 정부가 계속해서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정책을 만들어 놓고도 뭔가 새로운 노력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또 다른 정책을 도입하는 일이 반복되면 앞선 정책들은 빛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여성기업을 위한) 정책들은 잘 만들어졌지만 이것들이 현실에서 잘 적용되도록 하는 게 어렵다”며 “기존의 정책이 실행 단계에서 즉시 효과를 보지 못하면 바로 다른 정책으로 갈아타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여성 창업이 사회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분위기를 더욱 확산시켜야 한다”고 했다. 국내 여성 창업자 비율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미국의 실리콘밸리(24%)나 이스라엘의 텔아비브(20%), 싱가포르(19%), 영국 런던(18%) 등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한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박 회장은 “여성 소비자 수가 증가하고 소비활동에서 여성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인 만큼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감성적이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여성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여성 창업 분위기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손을 불끈 쥐어 보였다.

여성 기업인 자신도 창업 초반의 성공에 머물지 말고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전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박 회장이 취임 이후 스케일업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그는 회장 취임과 동시에 ‘스타트업을 넘어, 스케일업으로’ 등의 주제를 입에 달고 산다. 스케일업을 통해 여성벤처의 성공 모델을 만들어야 더 많은 여성이 벤처를 꿈꾸고 도전하는 분위기가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믿음에서다. 그는 “구글과 페이스북이 청년들의 창업 동기를 북돋운 것처럼 창업을 준비하는 여성들이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성공 모델이 많아진다면 여성 창업도 더 활성화될 것”이라며 “예비창업자뿐만 아니라 기존 여성 벤처기업에서도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의 꿈에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임기 내 달성하고 싶은 꿈”이라고 말했다.

실제 박 회장은 여성기업의 스케일업 도전을 위해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협회 내부에 ‘우먼 벤처 스케일업 프로그램(WVSP)’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WVSP는 기업가 정신과 리더십 등 스케일업 역량 강화를 위한 분야별 전문 교육과 비즈니스 네트워킹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추가 강연 요청이 쇄도할 정도라고 한다. 박 회장은 “여성 벤처기업이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성 CEO들에게 도전과 혁신의 기업가정신 함양과 스케일업의 필요성과 전략을 알려 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며 “사전 조사를 통해 여성기업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주제로 교육 커리큘럼을 구성했는데 지난해 호응이 좋아 올해 확대 시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기업경영과 조직혁신, 문제 해결 등 여성 기업인들이 경영할 때 공통으로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교육과정도 추가할 계획이다.

교육 프로그램이 여성 벤처인들의 호응을 이끌어 낸 것은 ‘26년차 CEO’인 박 회장의 고민이 묻어 있어 가능했다는 평가다. 박 회장은 “여성기업은 남성기업의 적이 아니지 않으냐”며 “함께하면 파이가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담=김홍길 성장기업부장 what@sedaily.com /정리=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ukkw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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