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회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활용한 여성성착취 사건인 ‘n번방’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본격화하고 나섰다. 하지만 여타 법률과 상충되는 문제가 남아 있고, 디지털성범죄 수익원 차단 논의는 아예 빠져 있어 완전한 해결책 마련까지는 갈 길이 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는 24일 여성가족부가 정부서울청사에서 연 n번방 대책 민관회의에서 경찰청 등과 함께 디지털성범죄 영상 온라인 유포 차단 기술 개선 및 확대 적용방안을 논의했다.
해당 기술은 디지털성범죄 피해 사례가 신고되면 인공지능(AI)이 온라인상의 방대한 동영상, 이미지 데이터들 사이에서 피해자가 삭제를 신청한 파일들을 신속히 찾아내 처리하는 일종의 자동 필터링 방식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40여개 국내 웹하드 서비스에 적용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AI의 처리속도를 한층 높이고,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내년도 연구개발(R&D)과제 중 사회적 문제 해결 과제로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포함하는 것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n번방 범죄를 제보해온 민간활동가모임인 프로젝트 리셋(Project ReSET)은 앞선 간담회에서 AI로 디지털성범죄 관련 영상을 자동으로 걸러낼 수 있는 기술을 모든 플랫폼 사용자에게 의무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이 같은 AI 필터링 방식은 SNS를 통한 단톡방 등 사인들간의 대화방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은 전기통신 감청이나 타인간의 비공개 대화를 녹음·청취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에 근거해 수사당국이 단톡방 자료 등을 압수수색할 수는 있으나 이는 법원이 영장에 명시한 일정 정한 기간과 범위 등으로 제한된다. n번방 사건처럼 텔레그램을 비롯한 SNS로 불법촬영물 유포시 상시적 AI검열을 적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날 민관회의에선 디지털성범죄자 추적·처벌을 위한 국제 공조 강화 방안도 논의됐다. 프로젝트 리렛은 유럽연합(EU)이 주도해 현재 미국 등 약 60개국이 가입한 사이버범죄조약(일명 ‘부다페스트협약’)에 우리나라도 동참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부다페스트협약은 성범죄 보다는 주로 해킹, 사이버공격 대응에 주안점을 둔 조약이다. 해당 협약이 규정한 사이버범죄 유형중 성범죄 관련 유형은 ‘아동 포르노그래피 관련 범죄’밖에 없다. 성인 여성에 대한 성착취 문제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부다페스트협약을 국내에 적용하려면 통비법,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등 여러 국내 법률에서 해당 협약과 상충되거나 미비한 부분을 개정해야 하는 대대적인 후속입법이 수반 돼야 한다. 이 같은 실효성 문제 등으로 인해 정부가 수년째 가입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형식적인 조약체결에 연연하기 보다는 차라리 실질적이고 실무적인 차원의 국제 사범당국간 공조와 수사인프라 확충을 하는 게 보다 실효를 낼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한편 이번 회의에선 n번방 개설혐의자들처럼 암호자산(암호화폐)으로 서비스 이용료를 받는 방식으로 디지털성범죄 수익을 챙기는 데 대한 대응방안은 다뤄지지 않았다. 암호자산을 주고 받을 때 거래소를 거치지 않고 개인간 직거래로 하면 익명거래가 가능해 현재로선 추적이 어렵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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