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구글이 기존의 슈퍼컴퓨터로는 1만년이 걸려야 풀 수 있는 계산을 3분만에 해결하는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디지털 암호라도 양자컴퓨터 앞에선 무용지물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처럼 컴퓨팅 기술의 진화로 디지털보안에 비상이 걸리자 국내 연구진이 양자컴퓨터의 공격에도 뚫리지 않는 암호기술을 개발했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암호기술연구팀은 양자컴퓨터를 이용한 공격에도 안전한 ‘다변수 이차식 문제’ 기반의 공개키 암호 알고리즘을 개발했다고 27일 밝혔다. 해당 알고리즘은 다변수 이차식 연립방정식의 해를 구할 수 없으면 사용자의 전자서명값을 절대 위조할 수 없도록 설계됐다고 수리연은 설명했다. 또한 기존의 공개키 암호 알고리즘(RSA, ECDSA 등)과 달리 소인수분해 및 이산대수 방정식에 근간을 두지 않고 있어 소인수분해 및 이산대수 문제를 실시간으로 풀 수 있는 양자컴퓨팅 기술인 ‘쇼어 알고리즘’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번 개발 기술은 저성능의 중앙연산처리장치(CPU)에서도 빠른 암호를 구현할 수 있어 저성능의 CPU가 탑재된 경량 사물인터넷(IoT)기기에도 적용가능하다. 해당 기술을 8-비트(bit) 수준의 CPU기기에 적용해보니 공개키 암호 속도가 국제표준보다 30배 이상 빨라졌다는 게 수리연측 전언이다.
수리연은 “현재 공개키 암호를 거의 외산암호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연구를 통해 인증, 무결성, 부인방지 기능을 제공하는 우수한 국산 공개키 암호 원천기술을 확보했다는데 의미가 크다”고 소개했다. 또한 “연구진이 개발한 암호알고리즘은 향후 자율주행차, 무인비행체, 착용형 스마트 기기, 스마트 제조 등 다양한 환경에서의 기기인증에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현재 블록체인 기술에 적용되고 있는 국제표준 전자서명인 ESDSA를 대체할 ‘양자내성 블록체인’의 설계도 이번 개발 기술 덕분에 가능해질 것이라는 게 수리연의 전망이다.
이처럼 양자컴퓨터 공격에 안전한 암호기술을 ‘양자내성 암호’라고하는 데 전세계적으로 개발 경쟁이 붙었다. 일명 ‘격자 기반 전자서명 알고리즘(BUSS-BI)’, ‘다변수 이차식 기반 전자서명 알고리즘(Rainbow) 등이 그런 차원에서 해외에서 개발된 상태다. 수리연이 개발한 암호기술은 이들 선행 양자내성 암호보다 속도가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심경아 수리연 암호기술연구팀장은 “이번 연구를 통해 개발된 암호알고리즘의 국내 표준화를 추진하여 외산 암호에 대한 의존율을 낮추고, 나아가 양자 컴퓨터 시대를 대비한 국산 암호의 세계화를 달성할 수 있도록 후속 연구를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IEEE 사물인터넷 저널(IEEE Internet of Thing Journal)’ 4월호에 게재됐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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