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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야단법석]대법원 파기환송으로 돌아온 불법촬영 관련 ‘잘못된 판결’들

불법촬영 현행범 임의제출 휴대전화 증거능력 없다는 2심 판결

대법 "제대로 심리 않고 직권으로 무죄 판결" 파기환송 돌려보내

2월엔 자고 있는 여성 나체 몰래 찍어 전송한 사건이 항소심서 무죄

대법 "미필적으로나마 의사에 반한다는 점을 표시했다고 봐야”

대법원 전경. /서울경제DB




전철, 버스 같은 대중교통이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 번화가, 휴대전화 화면을 쳐다보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다. 동시에 휴대전화로 뭔가 몰래 찍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도 익숙한 감정이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어디서든 사진과 영상을 찍을 수 있고, 찍히는 이의 의사에 반하는 불법촬영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전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면서 성착취 동영상과 불법촬영물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불법촬영은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을 적용 받는데, 어디까지가 불법촬영인지 판단할 수 있는 범위는 모호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불법촬영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하급심에서 무죄로 판결된 사건들이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된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불법촬영 중 현행범으로 체포된 피의자로부터 임의제출 받은 휴대전화는 증거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한 혐의는 무죄라는 판결을 대법원이 돌려보냈다. 앞서 지난 2월에는 술에 취해 잠든 여성의 나체를 몰래 찍은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건을 대법원이 파기하기도 했다.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17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와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운영자 조주빈을 도와 대화방 운영·관리에 관여한 공범 ‘부따’ 강훈이 탄 차량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성형주기자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가 이달 내놓은 선고 중에서는 수사기관이 현행범을 체포하면서 임의제출 받은 물건은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 있다. 기존 대법원 판례를 보면 이럴 때 사후 영장을 받을 필요가 없고, 증거능력도 인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218조에서 명시된 ‘영장 없는 압수수색’이다. 하지만 2심 재판부가 휴대전화를 이용한 불법촬영 사건에서 이 판례에 반기를 들었다.

박모씨는 지난 2018년 5월 경기도 고양시 한 전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휴대전화로 자신의 앞에 있던 여성의 치마 속을 찍다가 현행범으로 붙잡혔다. 같은 해 3월엔 전철 안에 휴대전화로 여성의 치마 속을 몰래 찍는 등 총 11번이나 신체를 무단 촬영한 혐의를 받았다.

1심은 유죄였지만 2심 재판부는 경찰이 박씨로부터 임의제출 방식으로 압수한 휴대전화 속 사진과 영상은 증거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일부 무죄 판결을 냈다. 의정부지법 형사1부(오원찬·박세황·고준홍 판사)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48시간 이내 사후 영장을 발부 받지 못했으므로 휴대전화에 대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설령 피체포자의 임의제출 진술이 있다거나 사후적으로 임의제출서가 제출됐더라도 구속영장 내지 추가 압수·수색 영장 청구 권한이 있는 우월적 지위의 수사기관 영향에 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판례에 반기를 든 2심 판결은 다시 상고심에서 파기환송 결정을 받았다. 상고심 재판부는 “법리에 따르면 현행범 체포현장에서는 임의로 제출하는 물건이라도 압수할 수 없고, 사후영장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원심 판단은 잘못됐다”며 “관련 법리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박씨 측이 휴대전화 제출의 임의성 등에 대해 항소하지 않았는데도 2심 재판부가 직권으로 임의성을 부정해 무죄로 본 건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직권으로 이를 판단하기 전에 추가 증거조사를 하거나 검사에게 임의성에 대한 증명을 촉구하는 등 심리를 더 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서울 홍대입구역에서 지하철 경비대 대원들이 지하철역 계단에서 몰카를 촬영하며 올라오던 군인 A씨를 현행범으로 잡고 있다./성형주기자




불법촬영과 관련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사건은 또 있었다. 지난 2월엔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가 술에 취해 잠든 여성의 사진을 몰래 찍은 혐의로 기소된 60대 남성 이모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했다. 이씨는 2017년 휴대전화 카메라로 피해 여성의 하반신 등 사진 2장을 찍은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피해자가 운영하는 유흥업소의 단골로, 외상값을 갚겠다며 피해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서 사진을 몰래 찍었다.

1심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유죄 판결했다. 집행유예만으로도 관대한 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 하지만 2심 재판부인 의정부지법 형사1부(오원찬·박세황·고준홍 판사)는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대화 도중 자연스럽게 사진의 존재를 말했고 스스로 피해자에게 전송하기까지 했다”며 “피해자가 동의했다는 취지로 답문을 다시 보낸 점을 보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고의가 있었다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한 술에 취한 상태라 촬영에 동의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까지 밝혔다.

물론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재판부는 원심 판결에 대해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의심만으로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봤다”며 “유죄를 인정할 심증의 정도는 모든 가능한 의심을 배제할 수준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메신저 대화를 보면 촬영 사실을 몰랐음이 분명하며 찍힌 사진도 피해자가 촬영에 동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서울 홍대입구역에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 관련 홍보물을 게시돼 있다./권욱기자


아직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관심을 끄는 사건은 하나 더 있다. 레깅스를 입은 여성을 불법촬영한 남성이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피고인 C씨는 휴대전화기의 카메라 촬영 기능을 이용하여 레깅스 바지를 입고 있는 피해자의 엉덩이 부위 등 하반신을 약 8초 동안 피해자 몰래 동영상 촬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2심은 C씨에 대해 “통상적으로 사람의 시야에 비치는 부분을 촬영했다”며 무죄 선고했다.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이유다. 재판부는 “외부로 직접 노출되는 피해자의 신체 부위는 목 윗부분과 손, 그리고 레깅스 끝단과 운동화 사이의 발목 부분이 전부”라며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 부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무단으로 찍힌 레깅스 사진을 함께 실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레깅스 차림의 여성을 찍은 사진이 각종 커뮤니티에 이른바 ‘후방주의’라는 이름으로 비일비재하게 올라오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여성계를 중심으로 판결에 크게 반발한 바 있다. 대법원의 판단이 주목되는 이유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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